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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주희와 같은 학과 선후배 사이라고 하지만




하숙집에서 보는 것 말고 선후배로써 서로 마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M.T 를 두어 차례 갔다곤 하지만 두 번 다 다른 조에 편성이 되어 있었고




‘과연 주희는 누구하고 어울리나?’ 얼굴 한번 흘겨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면




그 엠티에서 나는 가장먼저 [술.뻗.사.방]으로 가게 되었으니




주희선배를 볼 수 있는 여건조차 마련이 되지 않았다.




아. 술뻗사방이 뭐냐고??




술에 취해 뻗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방-_- 이다.




워낙 재정이 빵빵한 학과라서 그런 방이 따로 있었다.-_-




그러나 그날 수요일은 선배와 후배로써 주희를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기에 나는 설레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수업인지는 모르지만...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2학년 선배들의




수업이 있는 강의였다. 저번 주만 해도, 그냥 주희 선배가 수업에




들어오면 인사만 대충하고 식당으로 향했었는데...




이제는 그때와 입장이 달랐다.







숙생 "안녕하세요!!! 선배!!! (__ )>"







고개를 숙인 상태로 주희를 한번 흘겨보았다.




항상 보는 패션-_-이지만 정말 잘도 어울린다.




어떻게 옷이 날개로 보일까-_-; 천사의 날개..-_-




주희는 책을 가슴에 앉은 채로 손목을 살짝 들어 나에게 흔들며




답례를 해 주었다. 크게 인사를 하는 나를 보곤 당황하는 얼굴이다.







"이야~ 숙생이가 왠일이랴? 맨날 안녕하고 싹박아지 없게 굴더니




이젠 정신 좀 차렸나 보지? 후훗 주희가 몇 대 쥐어 박았나 모르겠네?"







주희랑 거의 자주 다니는 박모 선배다.




물론 여자고 나이는 동갑이다. 대부분의 2학년들은 나와 동갑내기다.




그들이 일찍 학교에 들어온 게 아니고, 내가 재수를 했으니까..ㅡㅡ;







숙생 "어의 선배-_- 나 선배한데 인사 안했어-_-"




박모씨 "그럼 그렇지! 후배 녀석의 싹퉁 머리하고는...( -_-)"







박모 선배는 MT때부터 같은 조에 편성이 되어 친하게 지내오던




선배였다. 나이도 같은데다가 같은 충남권-_- 소속이고, 더우기




내가 사는 지역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다.




즉, 같은 지역 출신인 것이다-_-; 세상은 우연이라는 것이 참 많다.




시골에 내려갈 때 이 선배랑 자주 내려가곤 하는데 항상 하는 소리가..







'야 나 농어촌 특별전형이니까-_- 남들 한데는 그냥 특차로




들어갔다고 뻥치는 거야 알았지?-_-;'







농어촌 특차라면 일반 특차보다는 무려 수능 점수 20점은 먹고 들어간다.







'선배. 나는 당당하게 정시로 들어 갔어-_-'







라고 놀리긴 하지만 나도 후보에서 간신히 뽑혀 들어갔다..-_-







하여튼 주희를 더 보고 싶은 아쉬움에 강의실을 한번 쓰윽 훑어보고




나가려는 나에게 말을 건 건,




정말 꽃 미남-_-같은 녀석이었다.




헉, 먼 남자새끼가 이렇게 얼굴이 허연 것이냐-_-;


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 녀석과 나는 눈이 마주쳐 버렸고




그 녀석은 같이 있던 무리들에게 눈길을 한번 주고는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_-; 순간 태영이와 나는 쫄았다.




외상값도 없고 카드빚도 없는 나에게 뭔 이유로 다가온 것일까.




하여간 그 녀석들의 모습은 마치 티비에서나 조연역할이나 할 법한




모습들이었다. 주연까지는 아니다-_-




아까 그 꽃 미남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다지 표정이 진지해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강의실 앞에서 삥-_-을 뜯을 것 같진 않다.







꽃미남 "저기요. 혹시 하숙생이세요?"




숙생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꽃미남 "아!!(서로 웅성웅성거리면서 주위에 있던 친구넘들이 신호를 보낸다)




저기 물어볼게 있는데요, 혹시 은경이랑 무슨 사이세요?"




숙생 "헉........."







순간 놀란 나는 황급히 강의실 뒷문 근처에서 물러났다.




'은경'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주희가 바로 코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_-;







숙생 "그냥 아는 사이인데, 왜 그러신지...."




꽃미남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에요??"




숙생 "네-_- 안 사겨여-_-"







나의 말을 듣던 녀석들은, 순간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듯 하더니...;;




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키는 멀대 같이 큰 녀석들이 허리를 숙이니깐




마치 내가 조폭 형님이 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지..-_-;; 그나저나 태영이가 참으로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_-; 태영아 너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단다...







태영이와 밥을 먹으면서 태영이의 수많은 의심과 질문을 흘겨 듣느라




정말 고통스러웠다-_-; 밥을 먹으려 하면 질문~ 국을 떠먹으려 하면 질문~




너도 알잖냐! 그냥 친구 잖어! 라고 한 나의 대답이 그렇게 시원찮은 대답인지




자꾸만 의심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태영이의 질문공세에 최대한 방어




자세를 취하며 꿋꿋히 밥을 먹고 있는데...




아까 나에게 다가왔던 남자 녀석들 몇 명과 여자애들 몇 명이서 식당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때 알아버렸다.




그 녀석들은 은경이의 같은 과 녀석들이었던 것이다.




얼굴에는 여자들만 하는 줄 알았던, 얼굴에 분-_-을 칠하고 있어




눅눅한 식당안의 습기를 전혀 흡수하지 않고 있었고




여자애들은 무슨 패션쇼에서나 봄 직한 옷들을 화려하게 입은 걸보니




확실히 연영과 애들이 분명했다. 확실히 샌님처럼 생긴 우리 과 애들과는




100배 차이가 나고 있었다-_-




그때 어느 녀석이 나의 밥먹는 모습을 본 듯했다.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쟤야 재" 이러는 것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곤 지들끼리 소근소근소근소근-_-;




매너도 없는 녀석. 너 네들은 그렇게 막되게 자랐냐? 모르는 사람이




보고 있는데 삿대질을 해 쌌고.







그 녀석들은 그날따라 어디를 가던 있었다-_-




밥 먹고 돌아오면서 잔디밭에 지내들이 학교 주인인 마냥 떡하니




자리를 잡고 남자 무릎에 여자 머리가 닿아 있었고




서로 껴안아 아잉아잉~ 하는 모습들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 웃긴 건 나의 모습을 보자 또 지들끼리 소근소근 거리는 모습을




또 한번 연출하는 것이다.




미치는 줄 알았다. 가서 왜 나한데 그러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까 그 꽃미남 녀석의 '사귀세요?' 라는 물음으로 인한




'말도 안된다' 라는 눈빛은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연상시키기에도




충분한 조건이었다. 젠장, 내가 몰 어쨌길래!! 내가 뭐가 부족하길래!!




(사실, 부족한 게 많지만..^^;;)







당분간, 후문 쪽을 이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후문 쪽은 이 녀석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므로 힘들어도 정문으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무시하면 그만이다! 라고 편하게




마음을 먹기에는 아직 내 성격이 예민하다.










태영이와 나는 같은 수업을 무려 3개나 신청을 했었다.




서로 사랑-_-해서는 절대 아니었고, 태영이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강원도 카지노에 있었기 때문에 수강신청을 할 수가 없다고 나에게




대신 수강신청을 해달라고 한 것이다. 수업을 맞추다보니




나도 모르게 3개의 강의가 겹치게 되었다.




'기초중국어'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때 중국어가 제 2외국어였던 나로서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기에 신청한 과목이었다.




일지 감찌 사람들을 피해 강의실에 무려 20분전에 도착을 하였으니




그냥 엎드려 교수가 올 때까지 잠이나 자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옷 주름에 의해 생긴 나의 얼굴흉터를-_-많은 학우들에게




공개할 수가 없었기에 그냥 멀뚱멀뚱 사람들만 구경하고 있었는데..




낯이 참 익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한 어느 여자를 자세히 보고




있으니, 이런 은경이와 자주 같이 다녔던 연영과-_-학생이었다.




으아악!! 어떻게 오늘은 이렇게 운수가 나쁜 것일까ㅡㅡ;




아까 그 녀석들의 재수 없는 눈빛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냥 수업 땡까고 나가버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그 녀석들이 도대체 왜 나를 다굴시키는지




왜 나에게 계속 이상한 눈빛만 보내는지 그녀에게 알아봐야겠다는




큰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나를 알아보겠다며 인사를 먼저 했다-_-;




그녀 "안녕하세요~ 혹시 은경이 친구 분?..."




숙생 "아~ 예~ 안녕하세요^^;;"




그녀 "혹시 기초중국어 들으세요??"




숙생 "(하긴 개강한지 1달이 다 되어가는 데 수업을 두 번 들어왔으니..;;)




네 이거 들어요^^;;"




그녀 "아 그러시구나... "




더이상 신변잡기 따위의 대화는 그만, 나는 급한 마음에 그녀를 밖으로 불러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숙생 "저기, 죄송한데 여쭈어 볼게 있거든요? 밖으로 좀..."




그녀 "네?"




갑자기, 그녀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녀를 향해 "역시 넌.." 이라면 부러운 눈빛을 보낸다-_-;




밖으로 나와 1층 매점으로 향했고, 카페라때를 하나 주면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은경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과 친구들 사이에 이상한




오해가 생긴 듯 하다, 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두 다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 알겠다! 라는 듯이 눈을 휘둥그래 짓더니 웃기 시작했다.







숙생 "왜,왜웃으세요? 뭔가 있죠? 그쵸??"




그녀 "아 그게요..^^"







꿀꺽. 침이 넘어갔다.




그녀 "은경이는 우리과에서 되게 인기 많은 애에요. 콧대 높은 우리과 남자애들도




은경이한데 대쉬를 되게 많이 했어요. 숙생님도 아시다 시피 은경이 되게




이쁘고 노래도 잘 부르 잖아요~^_^"




숙생 "아;;예 그건 저도 대충 아는데, 그래서 혹시 남자애들이 저를 질투-_-




하는 건 아니겠지요?^^ 하핫 설마요"




그녀 "(얘가 왕자병에 단단히 걸렸나-_-;) 아, 그건 모르겠구요.




은경이한데 데쉬했다가 실패한 애들끼리 은경이 남자친구가 생기면




서로 10만원 몰아주기로 내기 했거든요-_-; 2학기 동안 말이에요"




숙생 "헉.....ㅡㅡ"







어쩐지, 아까 그 녀석들 내가 은경이와 아무사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자




안도하는 눈빛이더라..







그녀 "근데요. 정말 은경이하고 안 사귀세요? 저는 사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숙생 "아, 그게요..."







차마, 은경이와 사귀었다가 헤어졌다는 말은 못했다.




그녀도 나름대로 은경이와 친구인데, 은경이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 쯤은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했다.




숙생 "친구인데 오해들을 하셨나 봐요^^"




그녀 "친구치고는 팔장도 끼고 장난 아닌 것 같던데. 같이 다니는 거 친구들이




많이 봤어요~~ 정말 아니에요??"




숙생 "네-_-;;; 아니에요"




그녀 "역시...은경이는..."




숙생 "네??"




그녀 "아,아니에요^^"







이럴 수가, 역시 은경이는 모!! 뭐가!! 역시 은경이가 눈이 낮질 않다고?




네 이뇬. 그걸 말하려고 했던 것이냐!! T_T




참을 수 없었다!






숙생 "그런데, 은경이가 그렇게 인기가 좋나요^^ 그냥 평범하던데.."




그녀 "아유, 은경이 이쁘잖아요. 제가 봐도 이뻐요.T_T 저도 은경이 처럼




이뻤으면 연예인하고 싶었는데, 저는 연출 전공이거든요"







어쩐지, 이 여자애는 남들과 달리 평범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자신이 못났음을 한탄 한 후,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그녀 "제가 알기로만해도 은경이 입학하구선 MT때부터 대쉬한 남자들 많아요




한 10명은 넘을라나? 어떤 남자는요.수업중에 꽃다발도 보내고 그랬어요




100송이였죠-_- 어쨌든 은경이는 절대 안흔들리더라구요. 남자친구가




있어서 대쉬에 실패하는 것이라고 친구들은 그러는데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죠^^; 근데 제가 생각해도 은경이가 남자랑 안사귀는게




신기하더군요. 남자친구 있으면 인기가 떨어져서 그런가?




허헐 방송채질인가 봐요~~ ^^;"







여기까지 듣자 내 머릿속은 극과 극의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은경이와 같이 살아봐서 아는데, 은경이는 한때 남자애들을




어지간히 방으로 불러들였었다-_- 즉 그녀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인기관리를 위해 남자한데 전혀 안 흔들리는 여자로 보이겠지만




가까운 하숙생활만 보더라도 그녀의 사생활은 엉망이었다-_-







또 한편으로는 잘생긴 남자들이 그렇게 대쉬를 하고 고백을 했어도




안 흔들리는 은경이와 사귄 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까 그 꽃미남 녀석-_-의 얼굴이 생각났다.




3단 논법에 의하여 은경이와 사귄 나는 그 꽃미남 녀석보다는 잘났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움화화화화화!!




하지만 화장실에 비친 나의 모습은 비참함 그대로였다.




얼굴은 크고, 여름해수욕장에 다녀온 듯 그을린 얼굴.




그리고 제대로 깎이지 않은 턱수염과 콧수염-_-




으어억, 삐져나온 콧털;;







손가락을 넣어 콧털을 다시 집어넣어 보았지만 이 콧털은




아까 그녀가 이마, 보고도 남았을 터였다-_-;







강의실로 돌아가니 교수는 칠판에 중국어를 하나씩 적고 있었다.







태영 "야 등시야~ 어딜 싸돌아다녀? 출석 이미 불렀어 임마-_-;"




숙생 "헉....-0-"







나는 왜이렇게 청승맞은 것일까.










지금 교수는 칠판에 하얀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희의 웃는 표정까지 선명하게 데셍을 하고 있었다.




당구를 좋아하게 되면 칠판이 당구대로 보인다던데,




가만히 있어도 주희생각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 한 고백.




그 고백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싶었다.




오늘은 주희에게 뭘 해줄까?




주머니에서 퍼런 지폐가 한 장 나오자 나는 다시 흐뭇해졌다.




빨리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 가야겠다.







..........................................................................................................













며칠 뒤였다.




나와 주희는 이젠 누가 보아도 잘 어울리는 커플로 판단을 할 정도로




자연스러워 졌다. 손을 잡은 단계에서 그 이상의 단계까지.




그날도 같이 영화를 보고 밤늦게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숙집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하숙집에는 미자누나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미자누나를 보자마자 놀란 가슴에 괜히 들킨 게 아닌가 싶어




맘조리기도 전에 미자누나는 우리들을 불렀다.




그리곤 말했다.









“너네 둘이 사귀지?”
















1명의 남자와...4명의 여자와의 만남은..

필연이다..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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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둘이 사귀지?"







...................................................................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술 마시는 건 싫어하는 큰 이유는




물론 내가 술을 못 마시는(4잔의 피자)이유도 있지만




너무나도 잔인하게 빨개지는 얼굴 때문이기도 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내 얼굴을 혼자서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재수 없을 지경일 정도다..







주희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청승스러울 정도로 조용하게 앉아 있던 미자 누나가 한 한마디 때문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에 빨간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정말 얼굴이 빨개지는 게 싫었다.




분명히 미자 누나는 내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적당한 핑계와 상황수습을 위해서 말을 꺼내야 했으나




꺼낼 말이 생각이 나지 않음과 동시, 사실대로 말하면 벌어질 여러 가지




파장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미자 누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




나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주희는 내가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립적인 대답을 대신 해 주고 말았다.







주희 "허! 언니가 무슨 상관이야??"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 주희.




아, 대단했다. 대단해. 아무리 서로 좋아하기로 약속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대놓고 미자 누나에게 민망함을 안겨주다니.




역시나 주희였다.....







나는 뻘쭘하게 그대로 서 있다가 주희가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는 것까지




보고서야 미자 누나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해, 너무나도 할말이 없어하며




미자 누나의 동그란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숙생 "엇;; 미자누나..."






여자들은 잘 울음을 터트린다는 건 극히 잘 알고 있지만..




어느 상황에서 울음을 터트리는지 몰랐던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한 샘이었다.




눈물을 보면 괜히 연민의 정이 드는 나는, 비록 주제넘지만




미자누나를 달래야만 했다.




하지만 비키라고 어린아이같이 떼를 쓰는 미자누나.




순수하다.....




그러나 누구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인가.......










점점 내가 양심의 털끝도 없는 놈 같이 느껴졌지만....




나는 죄가 없었다...










때마침 기연이와 은경이는 히히덕 거리며 하숙집으로 들어왔다.




서로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를 하면서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는 미자 누나와, 미자 누나를 달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둘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순간, 그동안 나 때문에 상처 받고 있을 줄 알았던 은경이가




아무런 심경의 변화 없이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다행스러워 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연 "어? 언니! 무슨 일이야??"




숙생 "......"




은경 "......."







누구 때문인지 대충 짐작하는 듯 하는 은경이는




나를 잠시 째려보더니 미자누나를 끌어안으며 토닥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










방에 들어오자마자 씻을 생각도 없이 나는 곧장 이불속으로




파뭍혀 들어갔다. 머리는 아직 무스 때문에 굳어 있었지만




지금 내 머릿속은 무스로 인한 딱딱함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아까 은경이의 눈빛. 미자누나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곤




나를 쳐다봤을 때 마주쳐버렸던 은경이의 눈빛 때문에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는 것이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자기 피해 의식 때문일까?




아까 은경이의 눈은 분명히 무엇인가 의미하고 있었다.







혹시, 나를 증오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자누나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은경이는




혹시 나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잠을 자려던 생각으로 이불을 뒤집고 있었지만




거의 1시간째 온갖 잡념으로 잠을 선뜻 이룰 수 없었다.




거실은 조용했다.




미자누나는 아직까지 주희의 사소한 발언에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띠리리릿'







문자가 하나 왔다.




안그래도 오지 않는 잠, 주희선배의 문자이길 은근슬적 바라며




핸드폰 폴더를 열어보았으나...




나는 반가움 대신 놀라움에, 조금씩 들려던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은경이었다...







은경이는 잠깐 나 좀 보자며 옥상으로 올라오길 부탁했다.




마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한 꿈을 꾼 것처럼..




방금 잠자리에서 생각한 여러 가지들이 현실이 되어가는 듯한 불안감에




선뜻 몸이 일어나 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은경이와 못 다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내 스스로 그렇게 위로하며 옥상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달빛에 비추어 그림자진 은경이의 모습은 그림 같았다.




무언가 꽉 찬, 무언가 넘쳐흐를 듯한 욕망과 질투로 꽉 찬 그림같았다.







은경 "왔어??"




숙생 "응..... 오랜만이다.."




은경 "......"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무언가 한 소리를 하기 위해서




자기 기분을 컨트롤 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급기야 은경이는 입문을 열었다.







은경 "진짜 오빠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데......




사람은 겸손할 줄 알아야 되.."







이해가 가지 않는 은경이의 말에 나는 오히려 반문했다.







숙생 "무슨 소리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은경이 쪽에서 비소가 들려왔다.







은경 "미자언니 정말 좋은 사람이야. 정말로, 진짜로 좋은 언니야..




그런데 미자언니까지 울려야겠어? 오빠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




나는 절대 미자누나를 울리지 않았다.




내가 그녀들에게 상처를 줄만한 일은 전혀 없었고,




상처를 줄 생각이 있었다면 상처를 줄 상황이 만들어지기 전에




제뿔에 두려워 뒤로 물러나는 성격인 나는...




그럴 상황도 만드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숙생 "나는......"







할말이 없었다.




'아니다' 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풀 수 없을 만큼 얽히고 섥혔다.







은경 "오빠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좋아하지도 않았을꺼야"







그리곤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한동안 가만히 서 있있었다.




제법 쌀쌀하다...










가을은 오긴 오나보다......










......................................................













그날까지만 해도




주희와 내가 사귄다는 사실에 대해서, 은경이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어쩐지 은경이가 나에게 하는 말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들과 사이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주희와 더 가까워져야 혼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손을 잡고 영화극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화 판플렛을 보며 무엇을 볼지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주희언니??"







라고 부르는 너무나도 낮이 익은 , 기분 나쁘게 낮이 익은 목소리에




고개가 돌려졌다. 설마 여기서 그녀가 등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터였다.







주희 "아 은경이구나~~"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고 있던 나와 주희를 보곤




은경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야 내가 은경이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알아버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은경이는 드라마에서 보면 뻔하게 나오는 비련의 주인공처럼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고 다시 주우며




친구와 함께 황급히 밖으로 나간 것이었을 터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은경이가 오늘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반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주희는 말도 없이 가버리는 은경이를 보곤




핸드폰에 전화를 걸면서 까지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내가 할말을 잃게 된 건 당연했다....










그날 밤에 하숙집은 정말 상상도 없을 정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나도 듣기 싫어 귀를 틀어막고, 그것도 부족해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상황회피' 라는, 남자로써 쪽팔린 행동이라 오해받을까봐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주희가 들어오자마자 은경이는 정신을 잃어 이성판단이 흐려진




동물처럼 주희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은경 "야!! 너 진짜 재수없는 년이다!! 너 나 하숙생오빠하고 사귀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꼬리 친거지 재수없는 년!"




주희 "....얘가 미쳤냐? 너 뭔소리야??너 술마셨니?"







얼굴이 너무 빨개져 차마 보지 못할 정도로 일그러진 은경이는




주희를 향해 자신이 이렇게 이성을 잃은 줄도 모르고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은경 "나 진짜. 너 같은 년 때문에 맘 잡고 사귄 남자한데 차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한데 차이고! 이게 다 너가 꼬리친 게 아냐??"







너무나도 불안하고 너무나도 무서운 걸 느꼈는지




나의 심장은 주체 못 할 정도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영문도 모르고 나를 쳐다보는 주희와 눈이 마주쳤을때는







죽어버리고 싶었다....







"야!! 너 진짜 미쳤어? 이거 너무한거 아냐? 너가 뭔 상관이야??"







나는 진심으로 주희를 좋아했다.




주희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혈안이 되어 있는 여자가




처음으로 남자에게 채여 이렇게 이성을 잃고 있다 할지라도,




나마저 그런 처지가 되고 싶진 않았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주희를 잃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은경이에게 말을 했던 것이었다.







"야 하숙생!! 너 그런 거였어? 이년 때문에 그런 거였어? 그런 거였냐고!!"







이미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은경이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주희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내 불안함.




하지만 주희는 고개를 떨구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뒤늦게 미자누나가 방에서 밖으로 나와 은경이를 말렸지만..







이미 주희는 나갔고, 나는 따라나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리는 건가...













은경이의 울음소리가 하숙집 안을 따라 다시 내 귀를 지나친다.















1명의 남자와....4명의 여자와의 만남은..

필연이다...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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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수능을 마친 그는 그동안 굳게 닫혀져 있던 노량진 H학원의




인터넷 동호회에 접속을 하였다. 수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험생들이 편히 쉬라고 만들어진 곳이니 만큼, 그는 이곳에서




재수생에 대한 서러움을 대신 위안 삼았었다.




이젠 수능, 끝났으니깐 다른 기분으로 사람들을 만나봐야지




새로운 기분, 그리고 기대감......










수능에 성공했던 실패했던 뒤끝이 없던 그로서는 곧장 채팅방에 문을 열고




친구들을 기다린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약 10분정도를 멍한 눈으로 막연하게 채팅창을 바라보며 누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자 그때 한창 유행했던 가을동화의 여주인공




[은서] 라는 닉네임으로 어느 여자가 들어왔다.




가을동화를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녀의 이름이 은서인줄만 알았었다...










그게 바로 그와 첫사랑의 첫만남이었다.










그녀와의 대화가 무르익을 때 쯤, 그는 느닷없이 롯데월드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부탁을 하였고 그녀는 그 부탁에 흥쾌히 가이드가




되어 주겠다고 한다. 다음날 그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서울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약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마음씨를 가졌을지 전혀 모르는




어느 한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그리고 약속을 위해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 이라는 존재가 '사랑하는 이' 가 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벙개' 라는 문화가 형성될 즈음, 강력히 비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그가 그런 기약 없는 만남을 위해 약속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2시간 30분 동안 걸려 도착한 서울역에서 만난 그녀는







형용할 수 없는...




'단어'라는 것들의 조합으로 문장화 시킬 수 없는...




아름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은 누구와 서로 사랑을 하기 까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단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없다, 라는 속담을




자신의 신조로 삼고 한 여자를 향해 끝이 없는 직선도로를 달리는




이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녀와 그는 정말 쉽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은서'와 처음 만난 날,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과의 모임도 같이 갖았었는데




온라인상에서 친하게 지내오던 친구 녀석에게 은서가 마음에 든다, 라는




눈치를 살짝 주자, 친구 녀석은 음흉한 미소로 살짝 잉크를 내가 보였다.




그리고 한창 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쯤 친구 녀석은 진실게임을




하자 요구하였고 짓궂게도 은서와 그를 집중 포화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은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은서에게는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심 속으로는 좋은 기분이었지만 겉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쑥스러워 하는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친구 녀석은 서로에게 원샷을 강요했다.




맥주 글라스에 가득들은 소주가 유난히도 투명했다.




결국 그는 은서를 밖으로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운 실내의 음악소리가 너무 작게 들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녀와 그 사이에서는 적막함이 맴돌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흘러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곤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기, 나는 너가 좋아서 친구들의 진실게임에 대답을 할 수 있거든?




너도 대답해라. 저거, 원샷, 죽어도 못해 나는…"







술 때문에 빨개져 있던 그녀의 얼굴의 농도가 더 진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불러내고 한 그의 용기 있는 발언은…




프로포즈였던 샘이다.







사랑이라는 걸 해보지 못한 그는, 사랑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전혀




느낄 수가 없었었다. 하지만 은서, 그녀를 알게 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녀에게서 배우기 시작하자 그는, 그 감정을 아끼고 충실하겠다 다짐을 한다.







실외에서 동호회 친구들이 있는 실내로 들어가면서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게 되어




말 못할 기분으로 가슴이 꽉 차 있었었다.







"아, 나 너의 이름 모르는데…뭐니?"







그녀는 작은 입술을 살포시 열며 말했다.













"주희……."
















...................................................................










S여대 앞 G커피숍에서 나는 기연이를 만나기로 했다.




아직 7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어두워지고




숍의 간판들이 불빛을 뿜고, 네온사인이 빛나는 것으로 보아




해는 벌써 짧아진 듯 하다.




이렇게 해가 짧아진 줄 몰랐는데….







딸그랑 소리가 나는 입구를 향해 바라보니




기연이가 들어오고 있었다. 손을 들어 내 존재를 알린다.







기연 "많이 기다렸지?"




나 "아니, 나두 방금 왔어"




기연 "오빠 담배 있어? 담배 한개만"







대학 와서 느낀 거지만 여자들이 참으로 담배를 많이 피운다.




내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이 흡연자였다.




다행이도 주문한 커피와 레몬레이드가 빨리 왔다.




먼저 나를 부른 건 기연이었다. 기연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죄인마냥 물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나는, 분위기가 지겨워




일어나고 싶을 즈음 아르바이트생이 와준 건 다행인 일이었다.







기연 "오빠. 요즘 어디서 자? 면도도 안하고 완전 폐인인데?




학교는 가긴 해?"







나를 보자마자 할말이 없었던지, 이제야 나의 안부를 묻는 기연이.




그렇다. 나는 그 이후로 하숙집에 가질 않았다. 삼수하는 녀석의




집에서 3일 동안 게임 방을 전전하며 지냈다. 그러길 벌써 3일째였다.







나 "아니, 안 갔어…."




기연 "중간고사도 별로 안 남았는데??"




나 "가야지…."







하지만 나는 아직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죄책감에 학교조차 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물으며 대화가 오가다가




느닷없이 기연이는 나에게 난감한 말을 던졌다.







기연 "오빠. 요즘 은경이 힘들어 하는 거 알어?"




나 "……"




기연 "오빠, 내가 은경이를 몇 년 동안 같이 지내왔는데 은경이가 이런 거




처음이야. 어제도 술 마시면서 괴로워 하길래…내가 이렇게 오빠




부른 거야... 아직 모르겠어?"




나 "뭘, 모르겠다니…?"




기연 "은경이한데 사과하고… 은경이랑 다시 잘 하면 안되?"







기연이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버릇처럼 담배에 손이 갔다.




기연이도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은경이한데 잘 못 한 게 없다. 은경이랑 다시 잘 하면 안 되냐니.




지금 내 입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기연이 너까지 그래야겠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줏대 없는 성격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고 누굴 사귀게 되었고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했는데




누굴 좋아하게 된 덕분에, 죄 없는 사람들만 울려버렸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뿌리자, 기연이도 담배를 또다시 물었다.







....................................................................







내가 S여대에 대한 추억이 있는 이유는..




은서가 S여대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끝나고 막연한 시간이 주어졌던 나와 그녀는




매일을 서로 함께 했었다.




그녀는 서울에 있었고, 나는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마음은 항상 같이 있었다.




그러다가 1주일에 한번정도 그녀를 만나면




마치 꿈꿔오던 일을 한 것처럼 너무나 반가워했고




내가 서울에 있는 시간 동안 그녀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밖에 없을 정도로 한시가 아까웠었다.




내가 지방으로 다시 내려가야 할 때는 마치 오랫동안 못 볼 것처럼




아쉬워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너무나 사랑했다.




이게 사랑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S여대에 합격을 한 후,




아직 대학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던 나는




조금씩이라도 열등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겠지만, 워낙 자격지심이 컸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보다 더, 그녀 앞에서 위축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회의의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점점 응어리가 커질수록… 내 태도에 변화가 생기자 그녀는




언젠가 울며 전화를 했다.




너 왜 이러냐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겉으로는 말을 했지만 이미 내 감정은




커질 대로 커져, 혼자만의 착각으로 그녀가 내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부탁이 있어… 너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해.. 나 힘들게 하지 말고..."







그녀의 마지막 부탁에 나는 아무소리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졌다.










정말로 나는 이기적인 놈이었던 게




혼자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 술을 잔뜩 마시고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만큼 밝은 목소리가 아닌 건 당연했다.




조심스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남자친구가 생겨서 다 잊혀 졌단다.




이젠 다 잊고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단다.




잔인하게도 직접 그 말을 나에게 했다... 잔인하게도...










................................................










"현주희인데요..?"







하숙집에 들어와 그녀의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있음을 알아 버렸다.




성은 달랐지만 이름이 같았다. 그것도 외모까지도.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였던가.




그 이후로 나는 주희 선배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역시 좋아하고 있다.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주희와, 선배 주희는 너무 닮았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에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성격 또한




과거 주희와 현재 주희가 너무 똑같았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림자 같은 면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집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을 잊으려면 사랑을 하라는 말이 있지.




나는 주희 선배 덕분에 사랑을 잊을 수 있었고




또 다른 사랑으로 나는 다시 과거를 잊고 행복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사랑마저




잊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미치기 시작했다.....







기연 "오빠, 그러면 은경이한데 확실히 말해. 주희 선배 때문에 안 된다고




이러지도 않고 저러지도 않고, 은경이한데 확실해 해서




은경이도 마음 정리 좀 할 수 있게 좀 하란 말야..."







나는 기연이와 대화를 끝내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건국대학교로 향했다.







은서는, 한창 서로 좋아하고 아껴할 때 건대 호수에서




잔잔하게 호숫물에 비친 보름달 빛을 보며 자그맣게 속삭였었다.







너랑 처음 채팅방에서 만난 날, 너의 컴퓨터가 다운이 되서 갑자기 나가고...




10분 동안 너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내가 그냥 나가버렸으면




이렇게 우리 사랑하지 못했을 거야….







우리들은 입맞춤을 했다.







이곳에서 나는 주희 선배와도 입맞춤을 했다.







나에게 건대 호수는 소중한 추억의 장소 차원을 넘어..




신비로운 곳이다.




많은 생각 끝에 여러 가지 정리를 하고




결국 나는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내가 잠시 하숙집을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불안감이 순간 몰려 왔지만




불안감을 느낄 만큼 나는 여유로운 놈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옥상에 올라가봤다.




왜 내가 항상 하늘을 쳐다보면 보름달이 떠 있는 것일까.



.......................









1명의 남자와...4명의 여자와의 만남은...

필연이다..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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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았다.




아직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직 9시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어떠한 기준을 9시에 두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나에게 있어 밤 9시는, 해가 이미 저 산 너머로 넘어가고




나의 하루 학교생활이 끝나고 막연함 속에




어떠한 기준, 설레임, 기대가 되어준 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주희를 마중 나가기 위해서




항상 밤 9시가 되면 도서관 앞을 서성였었다.




나는 시계를 보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학교로 향하였다. 고민은 이미 했고 고민에 대한 결론도 나왔다.







나는 다시 주희를 놓치기 싫었다.










아직 9시가 되기까지는 다소 여유러웠지만




나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주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뭐라고 말을 해야만 주희가 모든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해줄 것이며




뭐라고 말을 해아만 그동안 어쩔 수 없이 고민하고 힘겨워 하던 내 자신에




오히려 동정을 해줄까.




연민의 정이라도 좋았다.




비굴해도 좋았다.




다시 주희를 볼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서관 앞은 항상 적막했다.




풀벌래 소리를 들으며 주희를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오는 그녀를 마중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고독 속에서 하나의 존재가 다가온 느낌이었었다.




계단을 통해서 도서관안을 바라보았다.




혹시 없으면 어떡하나 라는 나의 불안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




주희는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저기...."







아무 표정 없이 문을 열고 나오던 주희는 나를 보자마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얼마 만에 만나는 주희일까.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한 건 며칠만이었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느낌에 그녀가 보일 반응에 대한 불안함 보다는




반가움이 더 앞섰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리 머릿속에 해명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주희를 보자 '생각이나 했었을까?'




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주희 "..... 밥먹었어?"







그녀는...




그녀는 말했다...




그동안 걱정하고 있었다는 거 다 알아...




집에도 못 오고 학교도 안가고...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가 걱정이 되었었어...




혹시 밥은 굶고 다니지 않았었니......




밥은 먹었니.....?










그녀의 반가운 미소는




그녀가 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주희는 말하진 않았지만, 말하고 있었다.










마치 먼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아들을 맞이하는 것처럼




주희는 학교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려갔고..




자긴 먹지 않으면서 돈가스 조각을 자르는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주희는 무엇인가 할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결국 그녀는 조그만 입을 열며 내게 말했다.







주희 "오늘 하숙집 올꺼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하숙집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주희는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미간을 찌뿌리더니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희 "물론 너가 힘든 건 알지만...나도 피해자야...




그런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은경이하고 미자언니하고 마주치면서




지내고 있는데..너까지 그러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




너만 손해야. 너만 혼자 상처받아서 치료하지도 않고




계속 상처만 곪게 만드는 거야"







주희는 의외로 진지한 구석이 있었다.




말수가 없는 편이지만 가끔 하는 말은 마치 소설의 한 문장을 보는 것처럼




상대방의 감정을 젖게 만들곤 한다.




다행이 주희는 나를 모두 이해하고 관용하는 듯 했다.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주희의




부탁 아닌 부탁은,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충분히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법 했다.







결국 나는 주희와 함께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1시간 전만 해도 불 꺼져 인기척이 없던 하숙집이었었는데




지금은 거실에서 나오는 불빛이 눈부실 정도로 밝았다.




그만큼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곳이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잠시, 누가 하숙집에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쉽게 발이 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기연이는 아까 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치지만




은경이가 있다면.. 미자누나가 있다면...







주희 "안 들어가?"







주희의 나를 안심시키는 뉘앙스 섞인 말에 긴 한숨을 쉬고




하숙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은경이는 같이 들어오는 나와 주희를 보고




기억하기도 싫은 혐오감을 다시 느낀 듯 문을 꽉 닫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때 결정을 했다.




더이상 그녀들 눈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하숙집에서 나오기로 결정을 했다.










......................................................................










하숙집에 안 들어간 시간들과




학교에 안 가게 된 시간이 같았기 때문에 학교도 오랜만이었다.




그날은 11시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일찌감치 와 버렸다.




아침에 그녀들과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학교에 오니, 할 게 없었다. 사람도 한명 없었으며




아침 8시학교의 모습이 이렇게 조용한지 처음 알았다.




고등학교 때는 7시 30분만 되도 북적북적 거렸건만




고학력이 될수록 게으름이 심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도 학교 안 오냐?]







학교 안간 4일 동안 태영이에게 매일 온 문자였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왔다. 그동안 나는 삼수하는 녀석 친구 집에서




지내왔다. 삼수하는 사람에 빌붙어서 이게 뭔 짓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내 친구는 서울에서 자취방 구해 놓구선




고시원에서 잠을 자곤 한다-_-; 부자 녀석이다.




어쨌든 답변을 했다.







[이른 아침에 왠 문자냐? 너가 이렇게 부지런해졌어?



나 학교다]







그리고 도서관에 엎드려 잠을 자려는데...답문이 왔다.







[허걱!! 야 드디어 온 거냐? 몸은 괜찮고? 다 낳았냐?]







그렇다. 나는 몸이 좀 안 좋아서 쉰다고 뻥을 쳤었다.




병문안 가봐야 되는 게 아니냐고 전화가 쇄도했지만




눈병이기 때문에 오면 너도 걸린다고 말하면서




얼부어 버렸었다.







그나저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태영이는 이렇게 까지 걱정해주고 문자도 보내는 유일한 친구녀석인데




나는 정작 그동안의 고민을 다 털어놓지 못하였다.




그녀들하고 하숙하는 것조차 말하지 않고 다녔으니깐




태영이가 나중에 모든 걸 알아버리면 얼마나 서운해 할까.







오전 11시쯤 태영이는 도서관에 와서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곤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태영 "확실히 이 녀석이 고생했긴 했나 보네.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




너 아픈데도 불구하고 맨날 DDR쳤지? 새끼.."







오랜만에 -_- 이런 표정을 짓는 나를 보더니




그게 반가웠나 보다. 태영이는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주면서




학교에 복귀-_-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나 싱글벙글




하면서 웃어재끼던지, 입에 귀에 걸려서 내려오질 않았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오바를 하나 물어보기도 전에 태영이는 대답했다.







태영 "이 형님이 말이다. 너가 없는 사이 또 한명의 여자와 므흣*-_-*한 관계




까지 갔단다. 후후훗 이번에는 정말 오래갈 꺼 같아."




숙생 "헉-_- 진짜냐? 누구야? 우리과?"




태영 "아니, 너도 아는 사람이야~~ 하핫 이제 그만!!"




숙생 "야;; 싱겁게 왜 그래.누군데?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구선 지랄이냐!!"




태영 "왜냐면, 요즘 애매한 단계거든 내가 담에 알려줄께 아직 확실하지 않아"





태영이는 이번 여자는 예전 여자들과 다르다고 입에 침이 튀도록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다른 여자들에게는 일방적으로 자기가 접근하느라고




돈, 시간을 소비했던 걸 생각하면




이 여자와 요즘 잘되는 게 너무 편하고 행복하다고 하단다.




흣......나는 살짝 비웃음을 던져 주었다.







숙생 "야 그나저나 오후에 나랑 어디좀 가자"




태영 "어? 왜? 나오늘 7시에 그 여자 만나야는데...언제 갈껀데?"




숙생 "강의 끝나고 곧장 가면 7시까지 내가 너 저녁까지 사줄 수 있을꺼야




걱정 붙드러 매고 가자"




태영 "저녁? 흣 좋다. 그 누나랑 밥 또 먹어야지! 근데 어디갈껀데?"







숙생 "고시원좀 알아보러...."










.....................................................................










결국 나는 학기 초 처음 생활을 했던 고시원으로 갔다.




막연하게 고시원을 구하러 가자니, 처음 하숙집 계약을 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발 벗고 나서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간다는 게 예전에 있었던 고시원으로 다시 갔지만




그 고시원 시설은 나쁜 편이 아니다.







태영 "그나저나 그 하숙집 아줌마가 그렇게 짠돌이였다니, 내가 만약




그 하숙집에 있엇으면 한마디 하구 나왔겠다!"







하숙집을 나오게 된 이유를 꼬치꼬치 묻는 태영이에게




하숙집 아줌마 이름을 팔게 되니 어찌나 찝찝하던지...







더 이상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내일부터 짐을 옮기기로 했다. 짐이라고 해봤자 조그만 박스 2개 밖에 되질 않으니




이사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기도 했다.




고시원 총무에게 계약금 5만원을 넘기자 시원섭섭했다..







내일이면 하숙집을 나간다.







숙생 "야 밥먹자!"







원래 뭐든지 마지막날은 의미가 큰 법이다.




태영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 하숙집 생활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터였다. 사연도 모르고 태영이는 나에게




얻어먹은 셈이 된 것이다.







고시원에서 멀지 않은 분식점;;에서 떡뽁이를 먹으며 이런 저런




학교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군대이야기도 하고 그러면서




태영이는 점점 다가오는 7시에 신경이 곤두서




흥분이 된 상태로 얼굴을 불그락 불그락 거리며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그때였다.




태영이는 잠시 화장실에 간다며 나갔고




나는 그 틈을 노려 떡볶이 몇 조각이라도 더 먹으려고




손놀림을 빨리하고 있는데...




태영이 핸드폰에서는 전화번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왠지 많이 본 휴대폰 번호.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받기로 하고 폴더를 열었다.




폴더를 열자마자 상대방의 여자는 뭐가 그리 급한지...




내가 대답을 하기 전에 말을 하였다.







숙생 "네 태영이 핸드폰입......."




그녀 "태영아! 어디야??"







엇.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이럴수가, 미자 누나였다.




이게 왠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이더냐




혹시, 태영이가 미자누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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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이 목소리는 미자누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내가 피해 온 하숙집의 여자였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태영이와 미자누나의 관계가 머릿속에 순간 미치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에 전화를 끊은 것이었다.







...설마 태영이와 미자누나가....?







순간의 당황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요즘들어 내 손톱이 남아돌지 않는다.




그때 태영이가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서 나는 말을 꺼냈다.







숙생 "새끼, 더럽게 손도 안 씻고 오냐??"




태영 "어라, 왜 그래? 남이야기도 아니면서-_-"




숙생 "나는 항상 손은 씻고 다녀~~대략 난감...;"







하지만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표정은 이미 굳어져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 어색한 분위기에 심취되어 죄 없는 떡볶이만 헤아리고 있는데




미자누나는 다시 태영이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고 그게 나임을 어느정도 예상했다가




내가 그냥 끊어버리자 나임을 확신했을 터였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생각에 당황을 하고 전화를 해야할지 안해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태영이에게 전화를 다시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영 "어랏 전화왔었네??"




숙생 "흠찔"




태영 "엇? 너 전화 받았어??"




숙생 "으,응 받았는데 잘못 눌러서 끊어졌어. 누구한데 전화왔냐?"




태영 "아~~ 그 누나일꺼야."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태영이의 모습을 보니




어찌나 난감하던지,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나는, 어짜피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 보다




사실을 알아버리고 솔직하게 행동 하는 게 나을 듯 하여




태영이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게 되서 미자누나와 그런 관계가 된 건지




그것도 묻고 싶었다.







태영 "야, 내가 사귀는 사람이 누군지 알어??"




숙생 "(헉, 이런 한발 늦었군) 누군데? 말해봐!"




태영 "너 미자누나 알지? 아니, 뭐 알고 있겠다"




숙생 "혹시, 미자누나?? 우와아!"







너무나 싫었다. 억지로 연기하는 건-_-;







숙생 "야!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데 말 좀 해봐!"





태영이는 이런 적은 처음이라는 듯이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진지한 자세로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태영이는 미자누나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학기초에는 수업시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자주 다녔으니까.




그러나 그녀와 본격적으로 친하게 된 건 예전에 속초에 다녀온 이후였다.




남자들이라면 보통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태영이는 미자누나에게 편안함을 느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밥을 얻어 먹는다' 라는 대학생 선후배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태영이는 점차 미자누나와 가깝게 지냈었다.




너무나 그 누나가 좋아지자 또 한번 태영이가 느끼는 갈등.




바로 그녀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워낙 패배주의 속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던 태영이인지라




그녀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으면 ‘나이차‘ 라는 숫자 때문에




또 한번 실패할 것이라는 태영이의 두려움도 잠시,




어느 날 갑자기 미자누나는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고




그 제안을 들어주기 위해서 대학로에 간 날, 미자누나에게 고백 받았다고 한다.







숙생 "야~~ 고백 받은 날이 언제냐? 기억나??"




태영 "글쎄, 추석 끝나고 얼마 안되서였지 아마? 언제부터 사귀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사귀자는 이야기에 대해서




언급은 없었거든. 근데 오늘 확실히 사귀자고 내가 말 하려고.."










나는 추운날씨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 국물을 막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자누나가 태영이에게 고백한 것은




분명히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자누나가 주희 선배와 나에게




사귀냐고 물어봤던 때와 태영이에게 고백을 했다는 그때와




시간상으로 대충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태영이었을까.




자신의 어려운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희생양이 된 태영이가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사랑을 잊으려고 시작한 사랑은,




금세 식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사랑을 잊기 위해서




시작한 사랑이니까...










태영 "야 나 그만 가봐야겠다. 잘 얻어먹었다. 언제 짐 옮기게??"




숙생 "오늘 돌아가서 옮겨야지..."




태영 "또 짐 옮겨줘야 되냐?? 젠장.."




숙생 "어-_- 또 수고해라~~"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금부터는 나의 모든 행동이 다 마지막이 될 터였다.




한두개 있는 가로등으로 간신히 시야를 느낄 수 있는 이 골목도




이젠 마지막일 것이다.




학교에 가면서 그녀들과 했던 수다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처음에는 여자애들과 같이 걸어 가는 게 뻘쭘해서




한 두 발짝 뒤로 물러나면서 걸었었는데. 뒤에서 누구의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아닌 척 열어둔 내 귓속에 들어왔었던




그녀의 대화들은 아침 등교 길을 너무 행복하게 해 주었었는데...







특히나 나는 하숙집 대문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많은 추억을 만들었었다.




특히 전신주 아래 가로등 불빛에서 호러스럽게 등장한 그 스토커가 생각이 났다.




아직도 주희를 사모(?)하고 있는지 빨리 들어가서




주희선배에게 물어봐야겠다. 최근에 찝쩍대던 남자가 있지 않냐고 말이다.







그녀들에게 저지른 죄를 가슴속에 담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껴왔었는데




이제 그녀들을 보지 않으므로서 그 가슴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현관문을 여는 내 손길이 매우 가벼워졌다.




작별인사는 못하더라도, 그녀들에게 나의 죄를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방책으로 하숙집을 나가겠다 라는 말을 하려




했건만, 하숙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내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하숙집에 그동안 너무 잘 적응했다는 듯이




예전에 고시원에서 가져오던 것보다 2~3배는 많았다.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2시간이 남짓 걸렸는데..




아무도 하숙집에 오지 않았다.







그나저나, 내가 집을 나가게 된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혹시 모르지, 태영이가 미자누나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서




고시원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할지.




적어도 주희선배에게는 당연히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서




다시 학교로 향하였다. 주희선배는 분명 내가 하숙집을 나가서




더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들 때문에 갈등을 하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되서 좋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만 생각을 했었어야 했다.










나는 너무 어렸다.




아직 세상을 몰랐다.




아직 여자라는 존재라는 걸 알아버리지 못했다.










나는 너무 이기적인 놈이었다....










주희를 전화로 불러냈고




나는 별것 아닌 듯이 그녀에게 하숙집을 나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







'잘 판단했다' 라는 그녀의 표정을 읽은 후




그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어처구니없는 말을...




나는 해버리고 말았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 같이 살래?"







사랑한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이 있다면 불가능이 없다고 했는데




아직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을 너무 쉽게 판단해 버렸다.




그녀는, 사랑하니깐, 당연히 나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줄 알았다.




아니, 진지하게 들어주진 않아도, 나의 말에 대해서




고민정도는 해줄 줄 알았다.







"너 장난해?"







그녀가 한 말에 대해서 무게감을 느끼고 내가 너무 그녀를 쉽게 봤다는




생각을 빨리 한 후 수습을 했었어야 했는데...







"장난이라니, 나도 그렇지만 너도 그 하숙집에서 지내기 부담스럽잖아.




나도 힘들지만 너도 많이 힘들잖아?..."







나는 너무나도 뻔뻔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너 정말 어이없다. 내가 그렇게 문란한 애인줄 알아?"







그녀 특유의 띠꺼운 말투는




내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나오는 내 성격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뭐? 어떻게 말을 그렇게 받아 들이냐?"




"그래서 나랑 같이 살겠다는거니!? 나 인생 그렇게 쉽게 살지 않아!"







그녀와 나 사이에 금이 생긴 건 정말이지 한 순간이었다.




그때까지도 제대로 된 의식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반응 하는 그녀가




너무 이상할 뿐이었다.




그것도 부족해, 그녀의 성격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누굴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 아닌 나로서




그녀가 나의 제안 때문에, 자신이 가벼운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는 것은




나의 인생철학이 쓰레기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순간 무너지는 자존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화만 냈으니까.







그때 그렇게 병신 같은 짓을 해버렸으니




지금 이렇게 땅을 치고 후회를 한다 한 들 어쩌겠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걸.










...........................................










그날 그렇게 하숙집을 떠났다.







당시에는 그렇게 그녀들을 보기 싫었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가장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 서로 기분 좋게 얼굴을 마주 하고..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했었으면, 다시 한번 미안했다고 한마디라도




했었으면, 지금 안타까운 하숙생활 추억에 조금이나마




밝은 추억이 있었을 터였는데....







그때 내 자신의 화를 못 이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싸들고




택시를 타지 않았으면...




택시를 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숙집을 돌아보며..




지금도 가슴 한 곳에 굳어져 남아있는 응어리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그녀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라면..







적어도...




처음 하숙생활과 마지막 하숙생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내 기억속의 하숙생활의 끝은




3년 동안 반복되며 후회와 아쉬움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물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고시원이라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학교를 오가면서




물론 그녀들을 마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에게 기회는 아주 많이 있었다.




하지만 주희선배가 나를 피해다니고 급기야 연락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까지 미치자, 그제서야 내 잘못을 확인해버렸다.




그 잘못을 알고 주희에게 손발을 비비며 잘못했다고 말하려 했지만...







시간은 너무 흘러 군입대 영장을 받고 심란해진 나에게




뒷전이 되고 만 것이다.




마음 정리할 시간도 없이 군입대 영장은 입대 보름 전에 나와 버렸다.

























.........................................................................
















2002년 9월.




나는 첫 정기휴가를 나왔고 휴가를 받자마자 태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태영 "어!! 학교 왔다구? 어딘데!"




나 "식당앞이다!!"







오랜만에 본 태영이는 헤어스타일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재수없게도 갈색염색에 바람머리였다.




솔직히 태영이의 얼굴은 몇 개월 만이었지만 그간 전화를 통해서




많이 연락을 해왔기 때문에 내가 학교에 온 목적에서 뒷전으로 밀렸고




나는 파릇파릇한 여학생들에 눈이 돌아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나 태영이는 미자누나와 사귀게 된지 1달 만에 헤어졌고




미자누나는 아직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휴학계를 내고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그동안 알고 싶었던 그녀들의 소식을 듣고 싶었지만




내 스스로 연락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부딪히는게 많았고




친구들을 통해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하숙생활을 너무 몰래했다.







"태영아 은경이라는 애 있잖어. 이쁘고 노래 잘 부르던 애~"




"아 은경?"







다행이 태영이는 은경이를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 생각이었지만 태영이는 다행이 아니라,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걔 요즘 안보여~ 뭐 하긴 하나봐."




"그래? 가수 대뷔연습하나? 하핫"




"그럴지도 모르지~~ 걔야 워낙 능력있는 애였으니까...."




"......."










도대체 내가 이곳에 와서 한 게 뭐가 있는가?




학교식당에서 밥이나 먹으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학교식당 밥을 먹으며 마음 편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는 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혹시나 마주칠 주희가 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 두 시간도 안 되어 학교 밖으로 나와버렸다.







.............................................................



















이 당시 나는 하숙생이야기를 이미 쓰고 있었다.




가끔 그녀들에 대한 추억과 하숙생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글을 써 보자라고 한 게 벌써 이렇게 까지 오게 된 것이다.







"1명의 남자와...4명의 여자와의 만남은 필연이다.."










그러나 실제 그녀들과의 만남은 필연적이지 않았다.







필연이라 함은 좋은 관계가 지속될 때만 쓸 수 있는 말인데




그녀들은 오히려 악연 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꼬오옥 필연이라고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내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들과 이야기를 필연, 좋은 관계였다, 라고 합리화 시켜야만




그 추억은 평생 내 가슴속에 남아...




내 스스로 채찍질 하며 더 이상 안좋은 일은 안 생기겠지라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들과의 만남을 평생 좋은 추억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글을 쓰며 또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1명의 남자와... 4명의 여자와의 만남은...




필연이라고......

















그동안 재미없는 글 읽어주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