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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의욕(이라기보다는 사실 일신의 영달을 위한 사욕이지만 어쨌든)으로 스페인 여왕의 지원을 받아 결과를 알 수 없는 항해를 하여 아메리카의 조그만 부속섬인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콜롬부스.
하지만, 그곳엔 이미 그 섬과 그 땅의 주인인 인디오들이 있었다.
게다가 배가 부서져 섬에 남겨진 40명의 선원들은 원주민의 저항으로 전멸해 버렸다.
2. 첫 항해를 마치고 스페인으로 복귀하면서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가져간 금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2차 항해 때 금을 캐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갔다.
하지만, 금 산출량은 형편없었다.
호래기 낚시가 생활 낚시의 대명사가 되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나빠진 것도 적지 않다.
칼싸움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몇 개의 섬을 다녀보았지만 결과는 별무 소득.
호래기의 메카인 한산도에서 마주 보이는 섬인 용초도를 2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섬이니 마음만 두고 있다가 이번 겨울에는 꼭 탐색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 마침 휘자님의 연락을 받고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다.
용초도가 최종 기항지인 섬누리호는 통영 여객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화도, 좌도, 죽도, 용초도를 돌게 되는데 실질적인 중간 기착지는 화도, 비산, 서좌, 동좌, 진두, 죽도, 호두의 7곳을 뱅뱅 돌아 2시간 넘어 걸려 비로소 용초에 도착하게 된다.
이 경우는 오후 배(2시 출항)가 통영에서 용초까지 가는 경로인데 용초에서 통영으로 돌아갈 때는 중간 기착지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가게 되어 40분 가량 걸리게 된다.
오전 7시에 출항하는 선편은 정 반대가 된다.
화도에서도 호래기가 제법 나온다는 정보도 있었지만 배를 타고 가면서 거쳐간 서좌, 동좌, 죽도 마을도 여건상 11월에는 호래기가 제법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기착지인 진두는 한산면 소재지이다.
따라서 섬누리호는 진두와 추봉도를 잇는 다리인 추봉교 밑을 지나가게 된다.
호래기 출조 때면 저 다리 위를 몇 차례씩 지나 다녔구나 하는 생각에 밑에서 보게 되는 추봉교가 새롭게 보였다.
"용초도에 마을이 두 개 보이던데 배가 어느 마을에 댑니꺼?"
사람 좋아 보이는 사무장은 호두 마을과 용초 마을 두 곳에 다 들리며, 호두 마을 쪽에 새로이 방파제가 놓여지고 있어 그쪽이 좀 더 조과가 좋지 않겠나 하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얘기를 나누는 사이 옆으로 바닷가에 면한 건물이 지나간다.
우리 나라 유일의 모래 사장 옆의 초등 학교(분교)이다.
한산 초등학교 용호 분교.
용초 마을과 호두 마을의 첫 머리 글자를 딴 이름인데 학교 위치도 두 마을의 거의 중간쯤이다.
만조 때는 학교 담벼랑에 바닷물이 찰랑인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영화 촬영지로 쓰인 적도 있다고도 하고.
호두 마을에 내리려 했지만 호두 마을을 보니 가로등도 보이지 않고 방파제가 항구를 거의 둘러싸다 싶이 되어 있어 한 마디로 "영~~ 파이다."
용초에 내렸다.
용초도에는 포로수용소가 있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비해 역사적인 조명을 받지는 못하였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다.
참고로, 추봉도에도 포로 수용소 터가 있다는 것을 혹시 아시는지?
작년부터인가 표지판을 붙여 두었으니 예곡 쪽으로 가실 일이 있으면 길 옆을 자세히 살펴보면 될 것이다.
추봉도 포로 수용소터는 현재 그 자취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용초도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낚시를 위해 내렸으니 그 내용은 일단 통과다.
해서 집 한 채를 통채로 빌려주는 민박(그래 봐야 방 하나만 쓰지만)을 4만원에 하나 잡고, 아직 호래기 낚시 시간은 멀어 우선볼락 채비를 하고 선착장 주위를 탐색해 보았지만 올라오는 놈들은
이 놈과
이 놈이 전부다.
위에 있는 놈은 배 아래에 툭 튀어 나오는 돌기 때문에 'ㅈ쟁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가시망둑(다른 분들은 돌팍망둑이라고 하는데 검색해보니 가시망둑이 맞는 것 같다.)이고 아래에 있는 놈은 아시다시피 놀래미.
아무도 없는 선착장 상판에서 민장대 호래기 채비를 펴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으려니 동네 어르신 한 분이 호래기 장대와 바께스를 들고 오셨다.
"여게 호래기가 좀 되는 갑네예."
"어제는 쪼매 나옸는데 모르지요."
좀 있으니 한 분 더 나오시길래 슬슬 불안해지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들도 줄지어 상판으로 올라오셨다.
급기야 나중에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은 그 좁은 우리 두 사람 사이로 대뜸 비집고 들어서시더니, 날 선 목소리로,
"외지 사람이 여게서 만다 하는교?, 여는 우리 하는덴데...... 저쪽 방파제에 가서 하면 되낀데 여서 만다 하고 있노?"
하면서 장대 채비를 왼쪽으로 던지고 오른쪽으로 던지고......
콜롬부스도 원주민을 만났을 때 이런 대접을 받았었을까?
방파제도 상판도 국가 재산일 건데 동네 사람들의 소유물로 생각하는가 보다.
방파제 불이 켜진지 30분 정도 지나니 호래기가 올라오긴 하는데 10분 정도 만에 한 마리 정도?
왼쪽에 있던 내가 두 마리를 연이어 올리자 이제는 아주머니가 채비를 내 대 위로 던져 왼쪽으로 날려 버렸다.
드디어, 나도 못 참고 딱 한 마디.
"아주머니, 이거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 자리도 저희가 먼저 자리 잡고 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오셨고......"
그제야 아주머니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로,
"아, 그기 아이고 왼쪽에 던질라 카이 아저씨 때매 못 던지서 그라지요. 내하고 자리 바꾸이시더. 오른쪽으로 오이소."
쩝.
칼싸움 피해 간 건데......
신대륙으로 갔다가 원주민에게 몰살 당한 콜롬부스의 선원들.
자리를 피해 마을 끝에 있는 방파제에 가니 옆 바람이 심했다.
초록색 등.
민장대 채비를 던져 가라앉히니 3m 정도에서 입질이 왔다.
얼른 걷어 올린 후 다시 채비를 던지니 이번에는 쌍걸이.
휘자님께 바로 전화를 넣어,
"이리 오시이소."
심한 옆 바람과 조금씩이지만 끊이지 않는 빗 속에서도 다행히 꾸준이 입질이 왔다.
바람이 심해 입질 파악도 힘들고 원투력도 떨어져 루어 채비에 2B 봉돌을 하나 채워 멀리 투척한 후 15초 정도 헤아리고 입질 파악 없이 바로 챔질을 하면 한 마리 혹은 두 마리가 틀림없이 걸려왔다.
바지 아랫단은 젖어가고 손에 낀 목장갑은 빗물로 축축해진지 오래.
9시 쯤 되니 아주머니 한 분이 또 우리 둘 사이에 끼여들었다.
......
쩝.
......
나도 조금 불편했지만 휘자님은 좀 많이 불편했을 거다.
결국 채비 엉킴.
9시 30분 정도에 입질이 뜸하기에 결국 1차 철수.
한산도 주민분들은 진짜 양반들이다.
"여게가 어데라고 작대기를 들이미노?"
라던 욕지도 주민.
"외지 사람이 여게서 만다 하는교? 여게는 우리 하는덴데."
라는 용초도 주민.
무엇이 섬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TV속에서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미소짓던 섬 사람들은 이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일까?
민박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들물에 맞추어 다시 호래기 사냥에 나섰지만 들물임에도 생각보다 입질이 시원찮을 뿐만 아니라 씨알도 현저히 작아져 11월 초 크기들만 나왔다.
결국 새벽 3시 조금 넘어 철수를 결정.
휘자님 쿨러는 반도 채 차질 않았다.
내 쿨러는 100마리는 겨우 넘긴 것 같지만 소문이나 기대에는 영 미치지 못하는 조과다.
콜롬부스가 가져 간 금을 보고 신대륙으로 몰려 간 사람들의 실망.
작년에도 휘자님과 두미도에 호래기 탐색을 갔다가 완전 황 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별 재미를 못 본 것이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7시 40분 배를 타기 위해 잠시 눈을 붙인 후 일어나 나가보니 어두운 하늘 아래 어디서도 보기 힘든 초록색 가로등이 마치 헛된 희망처럼, 사이렌의 노래처럼 여전히 방파제를 지키고 있었다.
사이렌의 노래에 홀려 파산한 배의 선원들.
콜롬부스는 자기가 발견한 신대륙을 황금의 땅 인도라고 믿고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항해를 했다.
내게도 아직 가 봐야할 섬들이 남아 있다.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무늬오징어낚시 끊었음. 묻지 마셈. ㅠㅠ
요즘 맘 같아서는 두족류 낚시 전체를 끊고 싶음. ㅠㅠ
나는 당신이 말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 볼테르
칼 싸움 피해서 간곳에서... 피곤한 낚시 하셧네요...
무슨 그런 아줌마가 다있는지.... 딱 보기에... 인상이 넘 좋아서 그렇습니다...
휘자님도 마찬가지고....담에는 얼굴에 밴드 몇개 붙이고 껌씹고 가이소^^
글 읽다보니 따뜻한듯 하더만, 뭔지 쌩~~~~ 허니 섬에 가고싶지 않은 느낌이
씁쓸한 기분도 있지만, 뭔지 모르게 또 섬마을에 한 번은 가고픈 생각은 몬지
ㅎㅎ
몇년전 화도 방파제서 씨알좋은 뽈락을
마릿수로 잡았던 기억이 나네요.
화도에도 분명 호렉이 많이 있을텐데
가기가 쉽지않아 가보질 못했네요.
조행기 감사히 잘보구 갑니다.
음~~~~ 휘자님대신에 내가 그게 갈뻔 했는데
함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정이 그정도 메말랐다니 아 통제라
비오는날 또 빤주 안젖었읍니까?
수고 만았읍니다.
용초도라 호레기가 나올끼라고 생각을 했는데
주민들과의 한판 승부라 쩝~~~~
이장님 설 지나시면 연세가 ㅠㅠ
몸생각을 하시면서 낚시 하시지 예..
그 추운날 비 맞아가면서 우와 대단 하십니더....
조행기가 왜이리도 슬픈지요? ㅠㅠ
저는 통영 어느 섬에 가서 이리저리 헤메며 몇마리 못하고 있는데 뒤쪽 배사이에서 현지 어르신이 계속 올리길래
옆에 가서 좀 올라옵니까? 했더니 다른데 가지말고 여기서 하이소 어제 두어시간동안 80여마리 잡았다며 자리를
양보 해 주시더군요. 그 어르신이 사용하던 새우(먹티) 사용 하라길래 어찌나 고마운지 만원 드렸네요.
설 연휴 잘 보내세요~~
고생하셨습니다...요즘엔 동네인심이 예전만 못하죠..물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데는 낚시하는사람들 잘못도 커지만...호래기가 비싸다보니 용돈 벌려고 하시는가 보네요...결론은 돈이네요...에휴~~~
약간의 쓸쓸함을 느끼지만 좋은 조행기 감사합니다.
섬이라는 한정된 곳에 살다 보면 자연히 보수적으로 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섬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나는 사람의 인성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도 방파제로 다니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한 때는 넘 고마운 분들을, 어떤 때는 상대하기 싫어서 자리를 피하기도 하고...)
조행기 쪼매 신경 써서 쓰셨구먼.
요즘 경상도 어딜가나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전라도 인심은 아직도 좋턴데.
그래서 휴가는 거의 전남쪽으로 가고 있지요. ^.^
용초도 ㅎㅎ 고생좀하셨겠읍니다 한편의 소설을 읽는 것같아 한참 웃었네요 ㅎㅎㅎㅎㅋㅋㅋㅋㅋㅋ 마음착하신 두분이 얼마나 마음상하셨겠읍니꺼 내성격같으면 헤엄처서라도 왔을겁니더 원주민 들 육지에오면 꼭 당한만큼 복수해주이소 ㅋㅋㅋ
고생했읍니다 두분 마음좀 푸시고 호래기 접읍시다요
저도 찜빠와 낚시하다 아짐한테 한소리 들은게 기억나네요..ㅋ
장대로 쳐박아놓고 안잡히니 루어로 잡는 우리한테 대놓코 앞으로 오지말라하더군요 ㅋㅋ
아저씨들이 다잡아가니 호래기가 안잡힌다나 머라나 ㅋㅋ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참고 더 열심히 잡았던기억이나네요 ㅋㅋ
잔잔하면서도 참 재미있는 조행기 였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신대륙탐사~ 캬~ 생각만해도 좋네요~ 어디든 새로운곳을 탐사하고픈 맘 가득 합니다 ^^
계셨던 상판이 어떤상황인지는 모르나~
아마도 개인 소유일 가능성이 큽니다.
방파제는 아니지만 상판은 각 개인이 만들거나 구입하거나 하는것도 있고, 마을 공동소유인것도 있습니다.
(저희 부친께서도 상판을 하나는 만들고, 하나는 구입해서 사용하고 계심)
사회가 구조가 복잡 해지고...
살아가는 방식과 삶의 정보가 넘쳐 얼키고 설켜서....
시골 구석구석까지 돈맛을 물들이니 차츰 촌부의 인심과 정이 매말라 가나 봅니다.
그래도 하며 막연히 기대를 하고 그곳에 발을 들여 놓는 도시민이
오히려 더 순진 한건지는 모릅니다 만은...
그래도 구수한 사투리에 "이추분데 여기까지 말라꼬 왔노??? 집에서 어무이 해주는 따뜻한
괴기국에 밥이나 말아묵지... ㅊㅊㅊㅊ" 하며 손이나 녹이고 가라는 노인네의 굵게 패인 주름
사이로 베어나는 진한 정이 그리울때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며 님을 조행기를 읽으니 애잔한 마음이 드네요
각박한 삶에 모두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황을 잘 보았으며 모쪼록 좋은것만 보시고 기억에 남기시길 ...
얼마전 동남아 일대를 3개월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필리핀 세부 막탄에 가면 필리핀 정복자 미켈란젤로가
원주민 지도자 라푸라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라푸라푸를 영웅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죽임을 당한 이유중에 하나가
원주민을 만만하게 봤다는 거였습니다.
라푸라푸를 영웅으로 받들지만
필리핀 사람들 외국계....특히 스페인 피를섞인 사람들
아주 자랑스럽게 떠벌립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스페니쉬 혈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아주 많습니다.
낚시가서 서운한 점은 한없이 이야기해도 되지만
콜럼버스와 비교한다는 건
좀 무리가 따르네요.
물론 나의 이런 의견은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냥 미켈란젤로의 행적을 따라 여행한 기억이 나
몇 자 적어 봤어요.
동낚의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이장님 멀리 가셔서 또 고생만 하고.
텃세도 받고 그러셨네요.
그래도 우짭니꺼 옛말에 똥개도 저거집 앞에서는 50%뮥고 들어간다 카더라 아입니꺼.
이제 신대륙 탐험 졸업하시고.
통영 가까운 갯바위 탐색해 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