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 공기가 좋기는 좋은 모양인지 소주 마시고 새벽 3시 넘어서 잤건만 7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뜨인다.

해 뜰 시각.

후다다닥 뛰어나가 대를 담궈보지만 이젠 청물끼 정도가 아니라 바닥이 유리알처럼 보일 정도다.



자고 있을 줄 알았던 보골님 멀리서 민박 창문 밖으로 목을 쑥 내밀고는 백면서생님 일행과 연락이 되었단다.



어제 저녁과 꼭 같은 찬에 간단히 한 술 뜨고 나니 아침배가 올 시각이다.

짐을 꾸려 배를 타고 나가니 새벽에 들어오신 조사님들이 돌무너진자리부터 염소막자리까지 포인트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첫날 조행기의 마지막 동영상 첫부분이 돌무너진 자리 근처인데 그곳은 발판이 아주 좋게 형성되어 있어 낚시하기 아주 편리한 포인트이다.  벵에돔과 감성돔이 잘 올라오며 귀찮기는 하지만 매운탕맛은 끝내주는 씨알좋은 술뱅이(용치놀래기)도 잘 올라오는 곳이다.

청물이 든 탓인지 그 많은 팀들 중 살림망을 내려놓은 팀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ㅈ됐다.  만지도 가봐야 황이구만.  ㅠ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대로 된 게 없다.

황쳤지, 식사 부실하지, 안주도 없지 게다가 청물이지.

멀리 보이는 섬들이 신기루 현상으로 인해 마치 공중 부양이라도 한 듯 보인다.



배는 어느덧 만지도 선착장엘 도착하고 반대편 방파제를 보니 백면서생님 일행이 보인다.

만지도 선착장 상판이 낮볼락 포인트이기 때문에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백면서생님 일행쪽으로 이동하는 건 뒷전이고 일단 채비된 장대를 꺼내 무조건 담가 보지만 초릿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건너편 방파제로 가서 백면서생님을 만나보니 진짜 '백면서생' 타입이시다.

그런데 백면서생님이 새로운 제안을 하신다.

만지도 바로 옆의 연대도에 아는 분이 있으니 낚시가 안되면 그분 배를 빌려 포인트를 옮기든지 아니면 선상이라도 하고 가자신다.



귀가 솔깃하지만 일단 배가 점심 시간은 넘어야 온다고 하니 일단 낚시는 시작.

짐이 많아 내 가방은 상판에 두고 온 관계로 다른 회원님들은 하던 곳에서 계속하기로 하고 나는 상판으로 되돌아가 근처에서 볼락을 노려보지만 역시 입질조차 없다.

동넷분이 한 분 선상대를 가지고 오시더니 청개비 끼워 옆에서 낚시를 시작한다.

초행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길래 요즘 조황을 여쭤보니 썩 좋은 편은 아니라신다.

20분 가량 삽질하고 있으려니 건너편에서 갑자기 보골님이 큰 소리로 외친다.

"행님, 이리 오이소.  볼락 씨알 좋은 거!!!"

그쪽으로 옮기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으려니 동낚인 대표 마담인 대방동님이 거진 200m 거리를 돌아서 걸어와 따뜻한 커피를 건네준다.

일행쪽으로 가보니 보골님이 적당한 씨알의 볼락(볼락회뜨는 동영상의 주인공)을 한 마리 잡아놓았는데 입이 귀에 걸려 있다.

그 순간 강력한 태클.

"무슨 볼락 한 마리 올리는데 세 사람이나 붙어서 올려야 되남.  투덜투덜..."

알고 보니 볼락이 수초에 감겨 한 사람은 대 들고 한 사람은 줄 잡고 한 사람은 볼락을 건져 올린 모양이다.

원래 동네낚시꾼들이 다 그렇지 뭐. ㅎㅎ

어쩌다 버리기 애매한 놀래미와 씨알 좋은(?) 미역치(따치, 쏨벵이)가 올라올 뿐 볼락은 그 뒤로 소식도 없다.



이럴 때는 동네낚시꾼 특유의 조법인 마구잡이 조법을 사용해야 하는 법.

처박기, 민장대 맥낚, 민장대 찌낚, 구멍찌흘림, 막대찌흘림, 묶음추에 딸랑이 조법까지 동원해 마구잡이로 휘둘러보지만 안되는 낚시가 그런다고 되나.

조금 있으려니 처박기 조법을 구사하시던 백면서생님이 엄지손가락을 꼭 쥐고 심상찮은 표정을 짓고 계신다.

보골님은 옆에서 칼 들고 미역치 눈깔 파서 문지르고......

가끔 쏘여본 사람은 그래도 약간의 면역성은 길러지는 모양인지 미역치침 한 방 정도는 대충 넘겨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증상이 꽤 호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만지도는 싸부와 자주 찾는 곳인데 싸부나 나도 미역치에 가끔 당하는 편이다.

이번 봄에는 싸부가 30분 사이에 침을 세방이나 연속으로 맞더니 결국 낚시를 포기하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미역치에 쏘였을 경우 초기 대응만 신속정확하게 하면 크게 신경 쓰일 일은 없다.

미역치를 손으로 잡고 뺄 때 순간적으로 따끔하는 느낌이 든다면 즉시(1초 이내) 손가락으로 주변을 꾹 눌러 피를 짜 내어야 한다.  미역치는 등지느러미가 보기에는 아주 부드럽게 보이지만 그 속에 바늘보다 예리한 침을 가지고 있어 순간적으로 깊이 박히면서 독액이 주입되는데 독액이 주변 세포나 모세혈관에 침투되기 전에 짜내어 버린다면 거의 아무런 증상없이 낚시를 계속할 수가 있다.

오후에 나도 한 방 맞기는 했지만 늘 하던대로 즉시 처리하고 나니 내가 쏘였다고 다른 분들에게 말을 해도 믿지를 않았을 정도이다.

어쨌거나 하염없이 밑밥은 뿌려지지만 이제는 깔짝대는 입질조차 없다.

쿨러를 보니 눈물이 콕 날려고 할 정도다.

볼락 한 마리, 놀래미 세 마리.  ㅠㅠ

"회 뜹시다.  소주나 한 잔 해야지요."

"......"

"......"

아무도 반응이 없다.  우쒸.

할 수없지.

"대방동님, 요고 좀 찍어 볼랍니까?  동낚인 자료 만들게."

"그라입시더."



볼락으로 대충 촬영을 한 후 이번에는 대방동님이 놀래미를 자기가 떠 보겠단다.

꼼꼼하게 칼질을 해 가면서......가 아니라 버벅 버벅.  ㅡㅡ;;

(동영상은 편집중입니다.)

마침 백면서생님이 퉁퉁 붓은 엄지를 하고서도 손바닥 크기의 도다리를 한 마리 걸어 올린다.

어쨌든 동낚인들의 주 대상어종을 몇 마리 썰어 놓고 나니 그래도 소주 한 잔씩은 할 만하다.

그제서야 낚시에 열중하던(또는 열중하는 척 하던) 보골님 잽싸게 오더니

"볼락, 볼락이 어느 깁니꺼?"

백면서생님이

"살이 흰 기 볼......"

까지 하자 대방동님이 얼른 말을 가로 막고는 양많은 놀래미를 가리키며,

"이거."

단 한마디만 한다.

보골님이 얼른 한 점 집어 씹더니

"음~~~ 역시 볼락이야."

대방동님과 백면서생님과 나는 점잖게 볼락을 집어 한 점씩.

보골님이 또 놀래미에 젓가락 가는 것을 보고는 백면서생님이 안스러웠는지 볼락이 어떤 것인지 얘기를 해 버린다.

"에이 쒸... 어쩐지..."

대충 한 점씩 먹고 나서 처량지심이 온몸을 휘감아 낚시가 지겨워지기 시작할 즈음 막대찌로 바꾸고 뒤에 합류한 플라이정님에게 수중찌를 하나 빌려 수심을 7미터 정도로 세팅한 대방동님의 대가 휘어진다.

"뜰채, 뜰채!!!"

허둥지둥 뜰망을 꺼내려 하니 지퍼가 염분에 굳어 열리질 않는다.

비장한 심정으로 회칼로 뜰망 가방을 찢어 뜰망을 조립하니 이번에는 나사 부분이 삭아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 갑자기 ...... 들어뽕.

25 약간 넘는 감성돔이다.



다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나오는 말들은 모두 거시기한 말들 뿐이다.

"어... 거 사람도 이상하구마.  이런데 까지 와서 잡어나 잡고."

"그러게나 말임미다.  동네에서도 잡어만 잡더마는 여게까지 와서도 저런 잡어나 잡고......"

"내가 밑밥 실컷 뿌려 놨더니 그게다 담가가꼬 그런 잡어 밖에 몬 잡아요?"

"나 원... 그 비싼 수중찌 빌려줬더니 잡는 기 그기 멈니까?"

그러게 잡어는 왜 잡냐고?

어쨌든 만지도는 살감성돔이 붙으면 마릿수로 붙는 특징이 있어 내심 큰 기대를 하고 다들 새로운 의욕에 넘쳐 채비를 투척할 즈음 여대도쪽에서 배가 하나 이쪽으로 직진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지인이 알려주는 포인트에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배에 옮겨타고는 포인트 이름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동.

"바닥에서 한 발 정도 위에서 하이소."

말 끝나기가 무섭게 한 분의 대에 20정도 되는 씨알의 메가리가 한 마리 올라온다.

'뭐, 씨알이 그리 큰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동네 낚시꾼들에게는 준수한 편이지.'라고 다들 생각하려는 순간 내 대가 활처럼 휘어진다.

펌핑 펌핑 펌핑......

오! 고등어...라고 생각한 순간 빛깔이 약간 더 노랗다.

세상에... 30이 훨씬 넘는 전갱이다.

다시 채비를 담그고 30초가 지나지 않아 대가 확 휘어지더니 이번에는 옆으로 마구 째기 시작한다.

분명히 고등어다.  아니나 다를까 올라온 것은 시장 고등어.

다들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의 대가 순서도 없이 마구 처박기 시작한다.

고등어, 전갱이, 전갱이, 고등어......

보골님의 대가 활처럼 휘어지더니 마구 휘젖고 다니다 올라온 것은 국도에나 가야 볼 수 있다는 40이 넘는 대고등어.

이번에는 옆에 있던 분의 대가 가볍게 휘어지더니 올라온 것은 준수한 씨알의 볼락.

"볼락이 떴습니더.  눈에 보입니더."

보골님이 외치더니 장대로 바꾼다.

밑밥을 칠 때마다 볼락이 피는 모양인지 적절하게 밑밥을 뿌려가며 볼락을 낚아내는데 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저 양반이 볼락낚시 첨 하는 사람 맞나?'

볼락의 활성도가 높기도 하지만 챔질도 수준급이다.

다른 사람 한 마리 잡을까 말까할 때 혼자서 세 마리, 네 마리를 올린다.

오늘 손맛 제대로 보는구만.

옆에서는 연신 전갱이, 고등어를 계속 올리고 어쩌다 볼락 한 마리씩 올리는데 보골님은 혼자서 볼락, 볼락, 볼락, 전갱이, 볼락, 볼락, 볼락, 고등어......

"대방동님, 보이소.  고등어나 전갱이 아니면 하다못해 볼락이나 이런 고급 고기를 잡아야지 감시 그기 머라꼬......"

이런 구박 받고 앞으로 감시 잡으려는 사람 있으려나 모르겠다.

잠시 입질이 그친 틈을 타 고등어 숯불 구이를 준비하려니 아무도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 끝까지 내 보고 다 해라 이 말이제.  늙은이 부려먹고 너거가 맘이 편할랑가 보자.'

고등어 가르고 소금뿌리고 숯불준비하고 고등어가 익어갈 때가 되도록 플라이정님 말고는 아무도 오질 않는다.



조금있다 온 백면서생님, 선장님, 플라이정님과 함께 한 잔 하고 볼락을 추가로 굽고 있으려니 더 이상은 입질이 없는 모양인지 멀리서 보골님이 달려 오면서

"볼락은 꿉지 마이소.  회 떠야 됩니더.  안 꿉었지예?"

절대 안 꿉었지.

소금 뿌려서 익히고 있는 중이지.

그런데 다들 볼락 회 뜨자고 말은 하면서도 나만 쳐다 본다.

......

......

......

할수없이 후다닥 일곱 마리를 썰어 놓고 나니 조금 모자란듯 하다.

"대방동님, 잡어 그거 주 보이소.  감성돔 회 뜨는 법 갤마 주께예."

감성돔 회를 뜨다 옆을 보니...... 볼락이 두어점 밖에 남아 있질 않다.

그나마 옆에서 회 뜨는 것을 지켜보던 대방동님이 한 점 집어 준다.

감성돔 회는 떠 놓았지만 볼락 먹은 사람들 입에 맞을 수가 있나.

이번에는 옆에서 백면서생님이 염장을 지른다.

"보골님, 전갱이 회 안 묵어 봤지요?"

......

말없이 회칼을 들고 돌아서서 전갱이 회를 뜨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ㅠㅠ

술은 술술 잘도 넘어가는데 안주가 모자라는 듯 조금 있으려니 대방동님이 칼을 들고 전갱이를 굽기 위해 '회를 치더니' 그래도 몇 마리 깔끔하게 장만을 해 둔 것도 금새 숯불에 익고 뱃속에서 익고 또 고등어, 전갱이......



급기야 선장님 감추어둔 댓병 소주도 나오고......

절반 이상 먹고 남은 것이 다들 이 이상 가져갈 수 있었을 정도니 손맛도 입맛도 징하게 본 셈이다.



해는 이미 넘어가고 여객선도 지나간지 오래지만 백면서생님 아시는 분 덕분에 시간 구애 받지 않고 달아까지 편하게 나올 수도 있었으니 오늘 낚시는 정말 흡족하기 그지없는 출조다.

뭐... 오는 길에 보골님 차가 증명사진을 찍은 것만 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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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무늬오징어낚시 끊었음. 묻지 마셈. ㅠㅠ

요즘 맘 같아서는 두족류 낚시 전체를 끊고 싶음. ㅠㅠ

나는 당신이 말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 볼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