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아기였을 땐, 뭔가 빠는 것에 집착 했겠지.
엄마의 젖꽂지, 엄지손가락, 혹은 그 무엇....

조금 자라나선 유쾌한 놀이와 즐거움에,
그리고 겨드랑이에 검은 날개가 생기면서 천사의 탈은 벗고,
낯선 이성에게 몰입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제짝을 찾아 둥지에 내려 앉은 나는 또 다른 것에 몰입하고 있다.
그건 바로 낚시.......

결혼하기 전에만 해도 이뻐보이던 많은 이성들이 요즘엔 어쩐지 시들하다.

마음이 늙어가는 징조일지 모르지만, 아마 생에서 낚시와 여자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별로 주저없이 낚시를 고를 것 같다.

물론 아내는 예외다. 아내는 여자 이상이니까... 후후... 왜 그런지는 결혼한 자만 알 수 있다.

그리 많지 않은 경험을 통해 여자에 대한 환상은 충분히 깨졌지만,
난 여전히 아름다운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관심의 대상에선 조금씩 벗어난
것 같다.

혈기 넘치는 어린 시절에야 이런 날이 올지, 겪지 않고서야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과정 역시 인생의 단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라 모든 걸 알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낚시라는 녀석 때문에 겉 늙어 버린 건 아닌지 걱정도 든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세상이고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니,
낚시에 대한 집착도 끝이 언제일지 나도 모르지만 지금의 추세로 봐선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뭐든지 과하면 넘치기 마련이라지만, 지금의 형편으로는 과하긴 커녕
늘 목 마른 상태이니 관계치 않겠지....

실제 낚시를 가보면 힘들었던 준비와 준비기간의 기나김, 피곤한 왕복의 여정
따윈 잊게 된다.

낚시 그 자체에만 빠져 드는 것이다.
낚고 안 낚고를 떠나서 무엇인가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의식의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몰입만이 그의 깊이를 그리고 넓이를 확장시킬 수 있다.
평생 무언가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죽을 때 갖는 공허함은 정말
쓰릴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몰입이라고 하면 나를 잊는 것이다.
무언가에 진짜 빠져들기 전에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나를 잊게 된다.

낚시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먼저 근심을 잊고, 생활을 잊고, 인간 관계를 잊는다.

간혹 제정신으로 돌아와 생활을 해나가지만 물가에만 가면 모든 걸 잊게 된다.
나중엔 자기 자신까지도.....

나를 잊는 낚시는 자연 속에 파묻혀 일부로 소화되어 버리는 걸까?
아니면 그 속에서도 나는 나대로 빛을 더해가고 있는 것일까?

혹, 그것이 알고 싶다면 몰입 속에 자신이 태워서 사그러져야 될지도 모르겠다.

뭐 꼭 그럴 필욘 없고, 간혹 낚시 중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면
가끔씩 세상으로 돌아와도 좋다.

어차피 길은 많고 인간의 의지는 무한하다.
누군가는 밥먹고 똥싸는 게 다 수행이라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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