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주낙
1977년 초 여름 김포공항.

남루한 한복을 입고, 일본발 도착홈을 초조하게 지켜 보는 할머니가 서 있었다.

얼굴은 뭐라 말 할수없는, 온갖 회한과 상념에 잠긴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왼쪽에는 새까맣게 그을려 얼굴이 검붉게 보이는 손자가 있고

오른 쪽에는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이는 중년의 아들이 같이 서 있었다.

" 어무니!아직 올시간 멀었소, 저기서 앙겄다 시간 되믄 옵시다."

" 나는 괸찮은께, 세철이랑 쩌기서 앙겆다 오니라."

" 아따!그라지 말고 같이 가잔 말이요.지금이 몇시간째요? 안뻐치요? "

" 내가, 갔다가 금방 온단 말을 믿고 30 년을 기다렸는디 이까지것이 뻐치겄냐? "

" 세철이 다리 아프껀디 아범이 데꼬 가서 안겆다 온나."

" 어무니 !아부지 얼굴은 알아 보겄오?이름이라도 들고 서 있으께라우? "

" 내가 아무리 그래도 느그 아부지 얼굴을 못 알아 보겄냐?안써도 된다...."

그렇게 서서 시간 반이나 더 기다리니 도착홈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할머니는 빠르게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안색이 어두워 진다. 처음엔 사람들이 물 밀듯 하다가 차츰 뜸해지니,

할머니는 혹시 " 비행기를 안탄건 아니까? " 하고 더욱 초조해 하는데...

맨 마지막으로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터벅 터벅 걸어 나오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옷은 감색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있으나 훤칠한 키에 몸메는 홀쭉하고

얼굴은 주름이 깊게 패여 누가봐도 시골의 촌로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보이자 마자 튕겨지듯 달려 나가서 할아버지의 허리춤을 붙잡고 대성 통곡을 한다.

마치 초상 집에서 들리는 곡 소리 처럼 가슴 깊이 울려 나오는 통곡이다.

" 아이고 ! 아이고! 내 원시야(웬수) 백대원시 내원시야! "

" 돈 벌어서 금방 온다더니 어디갔다 이제 왔오.아이고! 아이고! 내원시야 백대원시 내원시야! "

" 차라리 죽었으면 기달리진 않을건디 ......뭐할라고 살아갔고.....이내간장 태우더니..."

" 아이고 ! 아이고!..내원시야,백대원시 내원시야! "

" 이내 청춘 다 간뒤에 ...이제서야 돌아 왔오....메칠 있다 갈람시롬...뭐할라고 돌아왔오..."

그렇게 통곡을 하다가도 사이 사이에 긴 한숨을 쉬며, 한마디씩 내 뱉는다.

" 인자는 절대로 못가요, 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든지, 데꼬 가든지 맘데로 하씨요."

주위 사람들은 통곡 소리에 순식간에 할아버지 할머니 쪽으로 몰려 들더니

통곡 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고, 말없이 한참을 보다가 발 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큰 잘못을 했는지 할머니를 꼭 껴안고 닭 똥같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통곡 하더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아들 손자 있는데로 이끈다.

" 아범이 이준이고 이놈은 큰 손지 세철이요."

할아버지는 소개를 받고는 또다시 이들을 말없이 힘껏 끌어 안았고, 셋이서 눈물을 한참 흘린후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 이준아 고생 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연신 하며 두손을 꼭 잡는다.

이말을 들은 중년이 다된 이준이는 30년 만의 재회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일본에서의 생각에 감정이 더욱 복 받쳐서 말을 꺼내질 못하고, 말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만 흘리고.

손자 세철이는 아직 어린 나이고 처음 본 할아버지라 특별한 감정은 없지만 분위기상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는 남도의 한 작은섬 만석지기 강주사의 셋쩨 아들로 태어나,

혼인 하기전 까지는 말을 타고 다니고 하인들을 부리며 떵떵거리고 살았다.

그런데 혼인을 하고 저금(분가)을 나는데 강주사당신이 생각보다 전답을 적게 주었다.

만석지기인 강주사 에게는 첩이 여러 명이고 첩에서 생긴 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코 적은 전답이 아니지만 할아버지는 혼인전의 풍족함을 항상 꿈꾸고 살았다.

그러다가 아들 이준이를 낳았고, 더 이상의 애기는 생기지 않았다.

이준이가 9살 무렵 해방 되기 바로 직전 남쪽 섬에서는 밀수가 대단히 성행했다.

일본군이 자기들의 패망을 감지하고 가지고 있는 군수 물자등을 민간인에게 싼값에 팔아 넘겼고,

그것을 산 민간인들은 이를 비싼값에 되팔아 적지 않은 돈을 쥐게 되었다.

이들 무리중 할아버지 3형제도 포함 되었고 3형제는 돈버는 제미에 빠져서큰 모의를 하게 되었다.

" 이왕 밀수 할거 크게 한번만 하고 손 털자. "

" 그랍시다, 언제 까지 밀수나 하고 살겄오? "

그렇게 의기 투합한 3형제는 식구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답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밀항 하였으나 도중에 해방이 되어 일본에 갇힌 꼴이 되어 버렸다.



전답이 하나도 없는 이준이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할아버지가 떠난 초창기에는 강주사가 쌀도 주고 생활비도 간간히 주어서

그런데로 살 수는 있었는데 강주사가 돌아가시고 나자 첩의 손들이 단합 하여

자기들이 재산을 관리 했고 그걸 막을 만한 사람도 없었고 이준이는 아직 어렸다.

동네 사람들도 할아버지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할머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이런 동네 사람들의 돌변한 태도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이전의 고운 성격은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러운 사치에 불과 했다.

강해져야 했다. 독해져야 했다.그래야 아들 이준이랑 살아 남을것 같았다.

낮에는 날 품팔이로 연명하고 밤에는 물레를 돌렸다.

소쩍새가 울고 새벽 닭 울음 소리가 들릴때 까지 삵 바느질도 해야 했다.

그렇게 피 나는 할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준이는 공민 학교를 접어야 했다.

이때부터 이준이 에게는 커다란 목표가 생겼다.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일본에 계신 아부지를 만나 보고 싶은 것이다.

" 영이 삼춘! 내가 송아지를 키워 줄텐께 첫 새끼 낳으면 나 줄라요? "

" 나야 그럴 수 있다 만은, 너가 몇년간 키워야 한디 괸즘하겄냐? "

' 야! 괸찮해라우, 그라고 수영이 삼춘 한테도 부탁 했어라우..."

' 내가 소 살 돈은 없는께 몇년간 키워 주고 새끼 얻으면 그놈들 가지고 새끼 치송 계속 할라요."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 이루어 지자 어린 이준이는 남들이 소를 키우는것 보다 몇배나 고생을 해야 했다.

특히 겨울 철에 먹일 풀을 마련하는게 어려웠다.

논이 없어서 남들이 겨울에 먹이는 볏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볏집은 소의 먹이도 되지만 초가 지붕의 재료로 쓰기 때문에 논이 귀한 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품목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준이는 풀을 베어 건초로 만들어서 겨울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해서 이준이는 다섯 마리까지 소를 늘려 놓았다.

그러던중 6.25가 터졌고 준이는 독자라고 동민에서도 계속 징집에서 빼주곤 했었는데,

"이준아! 인자 나도 어쩔수 없다. 독자라도 군대 가야 쓰겄다. 영장 나왔다."

할머니는 앞이 캄캄했다. 혼자 살아 가야 할 일도 걱정 이지만

전쟁 통에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보낼 생각을 하니 도무지 불안 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는데,

이준이는 그래도 가고 싶은 눈치다.

" 엄니! 나가 군대 갔다 올때 까지 절대로 소 팔지 마씨요."

" 이놈아 그라먼 내가 다섯 마리를 어떻게 키운다냐? "

" 그래서 내가 영이 삼춘 하고 수영이 삼춘 한테 부탁 해 놨는께 잘 돌봐 줄 껏이요."

" 그 빗은 군대 갔다 와서 갚기로 했오."

" 그라고 혹시 새끼 낳으면 그것은 엄니가 알아서 하씨요.새끼는 엄니가 키우기 힘들꺼요."

이준이는 군대 가기전에 절대로 소를 팔아선 안된다고 몇번이고 다짐을 받고 입영했다.

그렇게 해서 군대에 간 이준이는 훈련중에 틈만 나면 고참이나 높은 분들께 묻곤 했다.

" 김상병님! 혹시 일본에 가는 방법 아십니까? "

" 아니, 나는 잘 모르고 중대장님이 일본서 살다가 왔는가 보더라, 중대장님 한테 물어 봐라."

이말을 들은 이준이는 중대장님께 잘 보일려고 열심히 훈련병 생활을 했다.그러던 어느날,

" 중대장님! 특별 면담 신청좀 하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 우리 아부지가 일본에 계신데 꼭 한번 가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 갈수 있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아 두었던 이준이는

전장에 파견키로 되어 대기 하고 있던중 휴전 협정이 조인되어 전장에 가지 않고

독자라서 남보다 짧은 기간에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다.

"와따 엄니 소 잘키웠오. 고생 했구먼이라. 새끼는 안 납디여?"

" 한마리 낳는디 가용 쓸라고 폴았다.그란디 이놈아 나보다 소가 먼저 보이냐?"

" 오메 그랬네잉, 그란디 혹시 큰집에는 일본서 편지 같은거 안 왔다요?"

" 왔단다 , 그라고 시계랑 이것 저것도 보내 줬는디 느그 아부지 소식은 없다더라."

그말을 들은 이준이는 옷도 안갈아 입고 큰집으로 달려가서 큰 아부지 주소를 손에 쥐었다.

" 엄니! 인자 소 전부다 폽시다."

"아니 오자마자 먼소리냐?"

"소 판 돈으로 일본가서 아부지 모시고 올라요."

"아 이놈아 일본이 어디라고 혼자 갈라고 그라냐?"

" 내가 군대서 자세히 알어 갖고 왔어라우."

할머니는 아부지 없이 자란 이준이의 한과 괴로움을 잘 알기에 어쩔수 없이 허락하고 말았다.

일본에 간 이준이는 중대장이 가르쳐 준데로 거루민단의 도움을 받아서

어렵게 어렵게 오오사카에 계신 큰 아부지를 만날수 있었다. 이준이의 큰아버지는 엄청나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 큰 아부지! 내가 일본에 아부지 만날라고 피눈물 나게 고생해서 돈모았오."

" 아부지는 살아 계신다요?""응 살아있다."

" 그라먼 뭣땜시 여태 안오고 편지 한장도 안보냈다요?"

"그건......"

"큰 아부지는울 아부지 어디서 산지 알고 있지라우? "

" 알고 있다......"

"그라면 당장 가봅시다."

"그건지금 안된다......" 이준이의 큰아버지는 이준이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었다.

" 아니 왜 안된다요? 아들이 아부지 만날라고 피눈물 나게 돈모아서 왔는디,그럴수 있오?"

이준이가 며칠을 사정해도 이준이 큰 아버지는 한사코 거절을 하였다.

그것은 이준이 아버지가 일본에서 재혼을 했고 둘째 애를 낳은지 이레도 안되어서

그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이준이 아버지가 뒷날 형님께 부탁했기 때문 이었다.

이준이의 너무도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 형편이 못되는 입장에 놓인 이준이 큰 아버지는

도저히 미안해서 이준이를 멀리 하려고 당분간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모으고 모으고 또 모아서 일본에 계신 아버지를 모셔 갈려고 했는데

모셔 가기는 커녕 얼굴도 못 보고피눈물 나는 서러움만 가득 않고 돌아 와야만 했다.

그때 이준이 큰 아버지께서,

" 이준아! 지금은 느그 아부지가 일본서 둘째를 엇그저께 낳아 널 볼 입장이 안된다."

" 대신에 올해는 꼭 느그 아부지 하고 한국에 한번 나갈께,... 이건 절대로 약속 지키마."

이준이는 그 상황 에서는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고

돌아오는 길에 소식 기다릴 어머니를 생각하니 죽고도 싶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오는 내내 바다만 바라보며 선상에 있었다.그리고 근 20년이 지난 것이다.



뱃머리에는 동네 어른들이 모두 나와서 할아버지의 30년 만의 고향방문을 반겨 주었고,

할아버지의 고향 집에는 밤새 인사오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30년 만의고향 방문이라 조상님 산소에 성묘를 가기로 했다.

그리고 산소가 섬 주변 곳곳에 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돌기로 하고 가는데

멀리서 농어 주낙을 하는 배가 보여서 이준이가 선장더러 배를 그리 가게 하였다.

마침 이준이가 아는 동네 동생뻘 되는 사람 이었다.

" 어이 성준이!아부지가 오셔서 드릴란디 농어좀 있는가? "

" 오메 오늘은 세마리 밖에 못 잡았오야.그란디 이 비싼 농어를 살라고라우?"

당시는 농어 1킬로면 쌀80kg 한가마 값하고 맛 먹었고 여름철에 가장 맛있다.

" 그래도 어짤것인가. 필요한디. 내일도 잡으면 한마리도 폴지 말고 전부 놔두소.내가 전부 살랑께."

"야알었구먼 이라우...."

할아버지 일행은 산소에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모여서 배에서 샀던 농어를 썰어 먹었다.

할아버지는 모처럼 만에 먹어본 농어가 굉장히 맛 있었나보다.

그런데 일행이 많아서 개눈 감추듯 없어 졌다.

" 이준아 ! 농어 더 구할수 없냐?"

" 야,여기서는 성준이 밖에 안잡은디 그걸 다 사왔는께 인자 없어라우."

" 대신 내일도 폴지말고 놔두라고 했능께 내일 싫것 드십시다."

" 내가 아부지 원없이 잡숫게 해 드리께요."이준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은 샛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서 농어 잡이를 나가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일주일 예정으로 입국 하였다.그리고 고향에서 2박을 했고

이준이는 두분만의 시간을 갖게 다른데로 여행을 가시라고 권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가고나면 큰 손녀랑 함께 살고 있는 부산으로 다시 가기로 했다.

가기전에 할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모든 손자 손녀들에게큰 액수의 용돈을 주었다.

" 이준아!또 가게 되어서 미안하구나."

" 인자 부터는 가끔 나올란다.그라고 이건 5백 만원이다.너가 알아서 써라."



할아버지는 가셨고 달포가 지나니 동네에서는 500만원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도회지에다 집을 사 두라고 했다.

그당시에는 도회지에다 집 한칸은 살 정도의 돈 이었다.

그리고 아들을 홀로 키우느라 독하고 모질게 변한 시어머니가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았겼다는 생각으로 갖은 구박을 일삼으니 시골에서 벗어 나고픈

이준이 부인도 도회지에 집을 사고 싶어 했다.그런데 이준이는 농어를 잡고 싶어했다.

" 세철이 아부지! 그돈으로 광주에다 집 한체 사 둡시다."

" 집은 나중에라도 살수 있으니,이걸 가지고 돈을 벌세."

" 아니 뭐를 해서 돈 번다요? 글지말고 집한체 사잔께요."

" 성준이가 요새 농어 잡어서 돈 무지 잘 번다데, 우리도 그걸 하세."

"오메 바닷일이 언제 사람 잡을지 모른디 왜 꼭 그걸 할라고 그라요."

" 광주다 집만 사놓고 돈없으면 이사 갈수 있겄는가? "

" 돈을 더 벌어서 이사갈 연구까지 해야하고 그래서 농어 주낙을 할라네..."

이준이 부인은 이준이의 확고한 생각을 꺽지 못했고 일견 타당한 의견인것 같아서

배를 지어서 농어 주낙을 하기로 했다.



주낙이란 초등학교 운동회때 자주 하는 과자 따먹기 처럼 긴줄에 바늘 달린 작은 줄을

여러개 달아서 고기를 잡는 도구이고 농어는 상층부를 유영하며 취이 활동을 하는

표층 어류라서 주낙을 바다의 표면에 띄워야 하고 줄이 떠 있으니 지나는 배들이

줄을 자를수도 있어서 주낙을 놓은 후에는 주위를 지키고 있는게 좋다.

그리고 미끼는 살아있는 새우가 좋으며, 산 새우를 구하기 위해 직접 그물로 잡아서 하는 배도 있고,

이준이네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서는 할수 없으니 친척 동생인 인태와 함께 했다.

그물에는 새우뿐 아니고 여러가지 고기가 함께 잡힌다.

그리고 이준이는 이상한 고집이 하나 있다. 큰고기는 절대로 바로 팔지 않는 것이다.

" 이준이성! 오늘도 큰 놈은 한 마리 남겨 놀라요?"

" 그래야제, 그래도 큰 놈이 물칸을 지키고 있어야 담에 안잡혀도 부담 없제."

" 아따 그라다가 죽어분게 한두마리요? 더구나 제일 비쌀 때도 안팔고 있다 얼마나 손해봤오?"

" 그때 손해 본거 담에 더 많이 잡아서 반까이 하세."

이준이랑 함께 농어 잡이를 하는 인태는 가장 큰 고기를 물칸을 지키고 있으라는 이유로

팔지 않고 있다가 죽이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 죽은 농어라도 절대로 자기집에 가져가지 않고

자기에게 주곤하니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큰 고기를 팔자고 강조 했다.

그리고 농어는 클수록 값이 잘 매겨진다.다섯 마리 합해서 10kg보다 한 마리가 10kg 나가면 값은

두 세배로 책정되고, 살아 있는게 죽은것 보다 몇 배는 값이 더 나간다.

이 사실을 이준이도 모르고 있는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준이는 만족 할만한 고기가 잡힐 때 까지 팔지를 않고 물칸에 살려둔다.

그래서 이준이네의 배에는 살아 있던지 죽어 있던지 간에 꼭 한 마리는 있었다.

그리고 농어는 자기 집에 가져 가지 않으니 식구들이 상당히 불평한다.특히 세철이가 그렇다.

" 아부지! 어째 우리는 농어 잡은시롬 한번도 못 묵어 본다요?"

" 나도 아직 안 묵어 봤다. 느그는 커서 많이 묵을수 있능께 그때 묵어라."

" 그래도 인태 삼춘네는 가끔 묵잖아요?"

" 인태 삼춘은 일도 잘하고 착실 한디 아부지가 돈을 많이 못줘서 고기로 준거다."

" 아부지! 삼춘네만 주지 말고 우리도 죽은 거라도 한 번만 묵어 봅시다."

그래도 이준이는 씨익 웃고 만다.다른 일로 고집 부리면 벌써 종아리에 횟초리 날라 갔을텐데,

자식들이 농어 예기 하면 어떤 고집을 부리더라도 씨익 웃고 만다.

한번은 엄청나게 큰 대물 농어가 잡혔다.

그동안 농어를 팔러 다니던 어판장에서도 볼수 없었던 대단한 크기 였다.

큰배의 물칸이 좁아서 농어의 꼬리 부분이 접혀질 정도였고, 굵기는 씨름 선수 허벅지 정도였다.

" 이준이성! 이렇게 큰것은 처음 보요야."

" 동생도 그란가 나도 그라네.혹시 용왕님 고기가 아닌지 모르겄네."

" 성! 이걸 팔면 쌀 열 가마니는 사겄오야. 죽어 분디 빨리 가서 폽시다."

" 폴지 말세...아니 안폴라네."

" 아니 왜라우? 고기에 비해 물칸이 작아서 고기 오래 못 산단 말이요."

" 이준이성!이 정도 크기면 징하게 비싸겄는디 안팔라고라우?"

" 우리가 이렇게 큰것을 언제 또 잡어 보겄는가? 비싼지는 알지만 폴기 아깝네."

" 성님은 참 미얀 사람이요이, 비싼지 뻔히 암시롱 안팔라고 한것이 이해가 안돼요."

농어 잡이를 함께 하고 있는 인태는 이번만은 이 큰놈을 정말로 팔아서 이준이네의 생할에

보탬이 되게 하고 싶었으나, 이준이는 그런 인태의 계속된 간곡한 청원에도 씨익 웃고 말았다.

이준이는 그날 저녁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로 다녀가시라고 권했지만 당장은 가기 힘들다 하였다.

이 큰 농어를 보려고 동네 사람들이 일부러 오기도 했고,세철이도 동생들 하고 같이 보았다.

보통의 농어는 상처가 나지 않으면 물칸에서도 굉장히 오래 살수있다. 개체수가 많고 적고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생명력이 강한 고기 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이준이네가 잡은 대물 농어는

물칸이 고기에 비해서 작으므로 그 농어가 이틀이 지나자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 이준이성! 지금이라도 갖다 폽시다. 내일까지 못 살겄오."

" 동상 그라겄제?시방 목따서 피 빼소."

" 뭐라고라? 이걸 죽이자고라? 나는 그렇게 못 하겄오, 할라면 성님이 하씨요."

" 아따 그라지 말고 자네가 하소."

이준이의 나지막 하지만 단호한 부탁에 인태는 어쩔수 없이 농어를 잡았고 속으로는

어디에 쓸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잠시후 이준이는 인태랑 농어를 들고 동네 노인정으로 갔고,

평소에는 한번도 칼을 잡지 않았는데 이날은 직접 회를 썰어서 노인분께 대접을 했다.

" 어이 이준이! 같이 묵세, 왜 자네는 한점도 안묵은가?"

" 많이 잡숫씨요. 나는 농어 안좋아 해라우."

" 아무리 안좋아 해도 잔 묵어보소, 좋은 안주 놔두고 미안하게 김치에다만 술을 묵으먼 쓰겄는가?"

" 그라고 너무 커서 다 묵도 못하겄네, 남은건 자네가 싸갖고 집에가서 식구들하고 묵소."

" 식구들은 다음에 잡어서 줄라요, 남더라도 뒀다가 내일 탕국 끓여서 잡숫씨요."

" 이랄때 자네 어마이 라도 있으먼 좋겄네마는, 그나저나 언제나 온다든가?"

" 안그래도 전화 했었는디 애기들 땜시 못 오고 추석에 온다 합디다."

그날 노인정에는 20여분이 모였는데 노이들이라 많이 못 먹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농어가 워낙 커서 상당히 많이 남았고 노인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준이는

한점도 안먹었고 집에도 가져 가질 않았으며, 이 사건으로 부인과 말 다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여를 농어 주낙을 하던중 이준이 아버지는 일본에서 사고로 돌아 가셨고

이준이는 시신없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엄숙히 치루었다. 그리고 2개월후....

" 인태동생! 나 농어 그만 잡을라네,인자부터 우리배로 자네가 다른 사람하고 농어 잡으로 댕기소."

" 오메 성님! 갑자기 그것이 뭔 소리요? 그라고 나는 성님 배 살 돈도 없어서 안되라우."

" 지금 당장 돈 달란 말 아니네 천천히 벌어서 주소, 자네같이 성실하게 하면 금방 갚을거네."

그렇게 해서 이준이는 농어 주낙을 그만두었고, 같이 했던 인태가 다른 사람하고 같이 하게 되었다.



30여년이 흘러서 이준이는 이제 70이 갓 넘었으나 대장암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병원에서는 길어야 한달여 정도 라고 하였다.그리고 생일을 맞았다.

도회지에서 살고 있는 세철이는 아버지의 마지막 생일 이라고

고향에서 나가서 살고 있는 남동생들의 식구들을 모두 호출 하였고 평일임에도 3형제의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케잌에 촛불을 밝히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직까지 농어 주낙을 하고 있는 인태는 바깥 마루에 앉아서 커다란 농어를 썰고 있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 3형제와 며느리들은 당신의 마지막 생일 이란 생각에 도저히 목이 메어서

노래를 할수가 없었고 두 눈에는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앉아 있을수 없는 이준이를 옆에서 잡고 있던 그의 부인의

눈에는 닭똥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으나 양손으로 남편을 부축하고 있기 때문에

닦을수도 없었고, 닦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준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생일 축하 합니다."

자식들 내외는 목이 메어서 노래를 못 하는데 유치원 생인 철부지 손자 손녀들이

나머지를 끝까지 불러서 마무리 지었고 자식 내외도 박수는 힘차게 쳐주었다.

"후...."이준이는 힘이 없어서 촛불을 부는 시늉만 했고

이번에도 손자 손녀들이 촛불을 껐다.

그동안다른것은 먹지를 못해서 두유와 누룽지를 으깨어서 만든

숭늉만을 먹으며 연명하는 이준이는 케잌을 권하는 자식들의 요구를 고개를 가늘게 흔들며 거절하며,

" 고...마..ㅂ...다!고...마..ㅂ..다!.를 힘들어 하면서도연신 말 하면서 세철이를 비롯하여

순서대로 앉아있는 자식 내외및 손자 손녀들에게 살아서의 마지막 대면이라 생각하고

일일이 눈을 맟추어 주었고, 희미하게 나마 모두에게 미소를 지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힘에 붙여서 다시 누웠다.

잠시후 밖에서 농어를 썰고 있던 인태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농어회를 들고 들어왔다.

" 성님!인자 농어 한점 잡숫씨요." 하면서 아주 잘게 썰은 회를 상추에 쌓아서 입에 넣으려했다.

" ..... "이준이는 입을 벌리지 않았고 먹으려는 의지도 없는듯 했다. 이에 세철이가

" 인태 삼춘! 아부지는 그런것 못 잡술거요. 누룽지도 포도시 잡수셔라.."

이 말에도 인태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랑곳 않고,

" 이준이성! 왜 농어 안 잡순지 인자 아요."

" 일본의 아부지 때문 이었지라우?"

" 그래서 아부지가 혹시 언제 올지 몰라서 물칸에 한 마리씩 꼭 살려 놨지라우?"

이준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자식들 앞에서 그 동안은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다.

" 성님! 인자 잡숴 보씨요." 그러면서 입에 가져다 넣어주니 입을 아직도 벌리지 않았다.

세철이는 아버지께서 못 드실꺼라 생각 했다.그래서 다시 그만 두기를 요청했으나,

" 성님 묵기 힘들어도 많이 잡수씨요."

" 많이 묵어 갖고 하늘에서 아부지 만나먼 나눠 주씨요."

이말을 들은 이준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누운채로 농어회를 먹기 시작했다.

이준이의 눈물에 방안에 있는 식구들이 다시 흐느끼고 애들도 숙연하다.인테는 계속 말을 이어 간다.

" 옛날에 잡은 겁나게 큰놈을 아부지 주고 싶어서 팔지 않고 있다가 노인당에 주었지라우?"

" 나가 오늘 가지고 온것도 제일 큰놈 이어라우."

" 이놈 많이 묵어 갖고 하늘에서 아부지 한테 전해 주씨요."

이미 이준이 부인은 뒤로 돌아 앉아서 엉엉 울고 있고, 다른 식구들도 어깨를 들썩인다.

" 성님! 미안하요... 미안하요...."

" 일본서 성님 아부지 오셨을때 농어에 맺힌 성님의 한을 너무나 늦게 깨달았오."

" 마안하요....미안하..."

인테도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질 못 하고 이준이의 손을 잡고 흐느낀다.

" 나도 저승 갈때 농어 많이 갖고 갈께라우."

" 그때 성님하고 아부지하고 나하고 그렇게 만나서 원 없이 묵어 봅시다."

"......"방안은 온통 침묵의 도가니며 흐느낌만 계속 된다.

이준이는 눈물을 흘리며 농어회를 천천히 그리고 어렵게 계속 먹는다.

인태의 말 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면 나누어 드릴 생각으로...

이말을 들은 세철이는 무엇으로 뒷통수를 맞은것 처럼 띵 하며 느낀게 있었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 대문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 그랬었구나......그랬었어..."

" 할아버지 때문에 농어를 잡았고 할아버지 먼저 잡순걸 보고 싶어서

당신도, 그리고 우리들도 못먹게 하였구나!"

"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농어 주낙을 그만 두셨구나!"

세철이는 이제서야 농어 주낙과 농어에 대한 아버지의 그 동안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더욱 슬펐고,

농어 때문에 예전에 아버지께 고집 부렸던게, 아버지 가슴에 못질을 한거라 생각하니 ,

그랬던 자신이 너무나 미웠고 몹시 후회 되었다.

그래서 흐르는 눈물을 궂이 닦으려 하지 않고 늦은 밤까지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

섬마을 맑은 밤, 세철이의 머리 위로 멀리서 별똥별이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까만 뒷산 너머로 사라졌다.

"이글은 인낚 회원님인 (조은날)님이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임니다"

* 개굴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9-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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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래기등 두족류에서 제철 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잡어조사로 변경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