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간부가 술에 취해 지구대에서 소란을 피우고 담당 경찰서는 `제 식구 감싸기식' 태도로 일관하는 등 경찰의 기강 해이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7일 술에 취해 지구대에서 소란을 피운 혐의(공무집행 방해)로 서울 모 경찰서 소속 이모(39)경감을 불구속 입건, 조사하고 있다.

이 경감은 전날 만취 상태로 택시에 탔다가 운전사 정모(58)씨와 시비가 붙어 택시비 2만7천원을 주지 않았고 서울 서대문구 연희지구대로 옮겨진 뒤에도 경찰관에게 폭언을 하는 등 소란을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연희지구대 A경사는 "이 경감이 손목을 비틀고 발로 찼다"며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 경감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경관끼리 서로 공방을 벌이는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서대문경찰서 한 간부는 16일 사건과 관련, 취재진의 사실 확인 요청에 대해 "연희지구대에 알아보니 전혀 그런 일이 없다. 경찰관이 음주소란을 피웠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사건 자체를 부인, 의도적인 은폐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새벽 서울 모 경찰서 소속 이모(51)경위는 교통사고를 내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던 중 담당 경관이 `입에서 술 냄새가 난다'며 음주측정을 하려하자 화장실에 간다며 도주, 40시간만에 나타났다.

또 지난달 2일에는 전북 모 경찰서 소속 김모(49)경사가 만취 상태로 차를 몰고가다 신호대기 중인 차를 들이받았고 같은 날 경기도 성남 분당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술에 취해 음식점에서 폭력을 휘두른 뒤 자신의 차를 몰고 귀가한 혐의로 입건됐다.

시민들은 경찰관의 음주 관련 사건ㆍ사고가 되풀이되자 "민생 치안에 힘써야 할 경찰이 오히려 술에 취해 문제를 일으키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음주운전은 뺑소니, 무면허운전과 함께 ‘교통의 3대악’으로 손꼽히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운전자 본인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재산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

우 전체 교통사고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많은 음주운전자들이 ‘사고만 안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운현궁 앞 도로에서 연말연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다. /김문석 기자

◇음주운전 여전=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 따르면 2004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건수는 총 2만5천1백50건. 전체 22만7백55건의 교통사고 중 11.4%에 해당한다.
이 비율은 지난 90년의 2.9%에 비해 4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또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875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6,563명)의 13.3%를 기록해 사고건수 대비 사망자 수가 다른 사고에 비해 높음을 보여줬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장성철 과장은 “음주운전에 대한 끊임없는 계도와 단속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수치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며 “처벌강화 등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음주운전을 저지르는 연령은 20~30대가 가장 많았다. 20대가 전체 음주사고의 26.8%(6,742건), 30대가 31.4%(7,901건) 등 모두 58.2%의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 무면허운전자의 음주사고비율은 2,916건(11.6%)으로 전체 사고에서 무면허운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4.4%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에 대해 교통안전공단 박노현 차장은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들이 무면허상태에서 또다시 음주운전을 하기 때문”이라며 “잘못 몸에 밴 음주운전 습관이 얼마나 고치기 힘든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릇된 인식 많아=2004년 음주운전으로 인해 형사입건된 운전자는 모두 50만4백46명으로 하루 평균 1,371명, 등록 자동차 100대당 3대꼴로 음주운전을 한 셈이다.
특히 경찰이 음주단속 방식을 ‘투망식 단속’에서 음주징후가 보일 경우에만 단속을 하는 ‘선별식 단속’으로 전환했던 2003년에는 음주운전 사망자가 전년대비 206명이 증가한 1,113명에 달했다. 이는 음주운전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 9월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정지당한 건설업자 이모씨(56)는 “이전에도 몇번 정지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아는 사람 중엔 얼굴이 닮은 가족의 면허증을 갖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부득이한 경우 음주운전을 한 경험이 있다는 회사원 김모씨(29)는 “술자리 동석자들이 모두 취하면 ‘음주운전을 하는게 남자다운 것’이란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이 경우 대리운전을 부르기 뭐해서 그냥 운전을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김만배 수석연구원은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만으로도 범죄”라며 “만에 하나 사고가 날 경우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엉뚱한 피해자에게까지 불똥이 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속현장 ‘요지경’- “나아 술 한 잔 했지만 멀쩡하단 말이야아. 내가 운전할 수 있다는데 경찰이 무슨 상관이야아, 엉?”


서울 지역의 수온주가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간 지난 17일 새벽 강남 테헤란로 역삼역 인근 구간.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시작한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음주운전 차량들이 속속 적발되기 시작했다. 한 중년 운전자는 음주측정을 거부한 채 소리를 지르며 버티기 작전을 폈다. 한 20대 여성운전자는 “술 먹고 운전했다는 사실을 집에서 알면 쫓겨난다”며 “대학동창들과 망년회에서 소주 딱 두잔 마신 것뿐인데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 사정했다.

음주측정 결과 혈중알코올 농도 0.075%(0.05% 이상이면 면허정지)가 나온 한 40대 남성은 “술 마신 지 4시간도 넘었는데 그럴리 없다. 기계가 고장난 것”이라며 경찰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얌전한(?) 음주운전자들만 있는 건 아니다. 한 음주운전자와 역시 술에 취한 그의 동료 2명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만취상태인 듯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들 일행은 경찰의 음주측정요구를 계속 거부하며 “내가 사고 안내고 들어갈 수 있다는데 뭐가 문제냐”며 생떼를 부렸다.


한 경찰은 “아직도 시민들은 음주단속이 운전자 본인의 안전을 위한 것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강남경찰서 교통지도계 이한구 경위(42)는 “심지어 ‘승강이 도중 음주단속 경찰관이 날 때렸다’거나 ‘자동차 트렁크에 고가의 골프세트를 실어놨는데 경찰조사 도중에 사라졌다’고 신고를 하는 시민들도 있다”며 “그나마 지금은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높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전 수원에서 발생한 음주단속 경찰관의 사망사고에서도 볼 수 있듯 음주운전 단속에는 위험이 항상 뒤따른다. 단속대상이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된 음주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경위는 “음주측정을 위해 손을 집어넣었는데 운전자가 유리창을 올려 팔이 끼거나 보행자들이 있는 골목길로 차를 몰고 달아나는 경우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털어놨다.

15년 동안 교통관련 근무를 해왔다는 이경위는 “음주운전은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며 “운전대를 잡기 전 한번만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린다면 음주운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기획취재부〉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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