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댕길 때 농활을 간 적이 있습니다.

농활 가면 여러가지 일거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농활 마지막날 저와 몇몇은 풀베기가 걸렸더랬습니다.

하필이면 자그마한 관목들이 섞인 언덕배기더군요.

후배들과 땀 빨빨 흘리며 소매 걷고 풀과 작은 관목들을 한참 베고 있는데 멀리서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이 한 말씀 거들어 주시더군요.

"학상들, 거게 짝은 나무들 중에 옻나무도 있응께 조심들 혀."

그러나 이미 옻인지 뭔지 모를 나무들의 잔가지에 긁힌지 오래라 팔뚝은 벌겋게 여러 줄이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정확히 이틀 후 팔뚝부터 울긋불긋 솟아오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입술까지 울퉁불퉁해지더군요.

약국에서 대~충 약 사서 발라 봤지만 사타구니까지 침범을 하는데 미치겠더라고요.

할수없이 병원엘 갔습니다.

그 때만 해도 개인 병원 접수 창구는 대개 영화관 매표소처럼 생겼었습니다.

접수 구멍으로 의료보험증을 들이 밀었죠.

잠시 기다렸더니 안에서 자그마한 그 구멍으로 얼굴하나가 보이더니

"어!  오빠!"

접수하는 간호사가 어찌어찌 아는 여동생이었습니다.

말이 여동생이지 세 살 차이니 뭐... 거기다 예쁘장하면서도 귀여운... 에... 여하튼 그랬습니다.

어쨌든 아는 사람 있는 병원이니 잘 됐다 싶더군요.

진짜로 진료실 들어가니 의사가 참 친절하게 봐주더라고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오빠, 주사 맞아야 되니 주사실 가 있으세요."

뭔가 찝찝한 느낌이 밀려왔지만 설마하면서 주사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주사기를 든 넘이 또 그넘이더군요.

어쨌든 팔을 걷으려고 하니 한 마디 합니다.

"오빠, 근육주사거든요."

"응?"

"그러니까... 엉...덩이..."

아... 그 조그마한, 차단된, 음침한(?) 주사실에 젊은 청춘 남녀 둘이 있으면서 스물 셋 한참 때의 아가씨가 스물 여섯 혈기 왕성한 젊은이에게 바지를 내려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으... 응.  ......  됐냐?"

차마 많이 내리지는 못하고 엉거주춤 엉덩이 윗부분만 살짝 보여주니 한 마디 또 합니다.

"아... 아니, 오빠 조... 조금만 더요."

머릿 속이 새하얘집디다.

주사를 맞을 때 분명이 이넘이 그 보드라운 손으로 제 엉덩이를 톡톡톡 치다 짝 치면서 바늘을 찌르고 또 톡톡톡 치다가 짝 치면서 바늘을 뺐음이 분명할 것이지만 저는

"조금만 더요."

다음 상황부터는 기억을 못합니다.

주사실을 나와 약을 받으러 가니 끝까지 이넘입니다.

"오빠.  저... 저... 내일 또 ... 오셔야 되요.  알았죠."

제가 미쳤습니까, 거길 또 가게.

그래도 주사덕인지 햇볕 안보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더니(아마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나갈 생각이 안 났을 겁니다.) 나흘쯤 후에 낫더군요.

이넘이 제가 직장에 있을 때 또 우연히 만나지던데 그 때는 서로가 어느 정도 생각을 하면서 데이트도 하곤 했었지만 이넘의 또 다른 한 마디에 제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얘기는 담에 시간이 되면 또 쓰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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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무늬오징어낚시 끊었음. 묻지 마셈. ㅠㅠ

요즘 맘 같아서는 두족류 낚시 전체를 끊고 싶음. ㅠㅠ

나는 당신이 말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 볼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