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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사러간다던 신랑, 벵에돔에 눈멀어 첫날밤부터 외박 │
│·"한달 한번만" 처가 찾아가 맹세후 하룻밤도 못 넘기고 │
│·갓난아기 두고 외출한 아내 " 애까지 업고 나설 줄이야" │
│·취미로 권했다가 땅 치며 후회 "예방만이 유일한 방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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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엔 야구광, 독서광, 골프광 등 한가지 일에 몰입하는
광들이 많다. 최근엔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의 선발등판 경기를 중계할 때면 만사 제쳐놓고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박찬호광'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관류하는 지독스러운 광기(?)의 취미 활동 가운데
'낚시'를 빼놓을 수 없다. 밥 먹기보 다 낚시를 더 좋아한다는
낚시광들의 각종 에피소드와 해프닝을 모아 봤다.

낚시 고장으로 유명한 부산에서도 소문난 낚시광으로 A씨가
있다.그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서는
첫날부터 사고를 쳤다. 신부가 귤이 먹고 싶다고 해서 체육복
차림으로 사러나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도로에서 몸 길이 50cm나
되는 대형 벵에돔(색깔이 검은 돔의 일종,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낚이는 힘 좋은 물고기)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있는 낚시꾼들을
만난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A씨는 어디에서 낚았느냐고
물었다. 제주 낚시인들은 "저녁이면 돌아올 수 있다"면서 이
낯선 사람을 그들의 밤낚시에 초대했다. 신랑은 잠깐 손맛에
눈이 어두워 기다리는 신부를 팽개쳐두고 성산포 우도로 들어
갔다.

거기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배가 고장나서 제때
철수를 못하게된 것이다. A씨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도리없이
바위 위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신혼의 달콤한 꿈에 잠겨
있어야 할 신부는 눈물과 불안속에서 첫날밤을 지샜다.
다음날 신랑이 부랴부랴 호텔로 찾아갔을 땐부산의 친가와
처가에서 난리 굿 판이 벌어져 있었다. 그날로 신혼 여행이
마감됐음은 물론이다. 신랑이 손발이 닳도록 빌고 빌어
간신히 파경은 막았다. 하지만 원앙금침을 깔아도 시원찮을
첫날밤부터 부인과는 평생 씻기 어려운 앙금을 깐 것이다.

낚시꾼과 그의 '불행한' 아내가 벌이는 해프닝은 동서양을
막론한 부부 싸움의 고전이다. 결혼 이전에 낚시에 맛들인
남자들은 신혼 여행 중적어도 하루 이상은 낚시 일정을 넣고
싶어하고, 신부는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제주도로 가자고
해놓고 다음날 바로 신부를 추자도나 차귀도로 강제 압송
하는 신랑도 있다.

"연애할 땐 낚시가 낭만적인 취미라고만 생각했어요. 주말만
되면 그와 함께 강이나 바다로 떠나는 것이 즐거웠지요.
그러나 지금은 남편따라 가봐야 낭만은커녕 식모 노릇밖에
못해요. 그러다보니 일요 과부가됐지요." 경남 창원시에
살고 있는 낚시꾼 아내 C씨의 한탄이다.

C씨의 경우엔 남편이 낚시꾼임을 알고 한 결혼이지만 전혀
모르고 결혼한 사람도 많다. S씨(50)는 서울 태생으로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K씨와 결혼했다. "처음엔 그렇게 낚시를
좋아하는 줄 몰랐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다른 낚시꾼보다
훨씬 더 중증이더군요." 경북 안동에서 천석꾼 아들로 자란
K씨는 낚시하러 다니느라 물려받은 재산을 거의 탕진했다.
낚시를 위해 회사도 그만둔 그는 한번 나가면 두세 달 후에나
들어오는 기벽을 보였다. 국내 낚시에 만족하지 못하자 마침내
싱가포르·태국까지 원정을 다녔다. K씨는 결혼하기 전 이라크
의 건설 현장에 있었는데 이란과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무장
병사들의 경비가 삼엄한 티그리스 강변에 숨어들어가 낚시를
즐긴 전력도 있다. 현재 K씨 부부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저수지에서 매운탕 집을 경영하고 있다. 물가에서 살겠다던
K씨의 고집에 못이겨 이사한 것이다. K씨는 소원을 이룬
셈이지만 그 와중에 부인과 1년간 별거하기도 했다.

낚시꾼들은 물만 보면 낚싯대를 드리우고픈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언제라도 낚싯대를 담그기 위해 차 트렁크에는 항상
낚시 가방이 실려있다. 경기도 평택시에 주말마다 낚시터로
내빼는 남편과 못살겠다며 친정으로 달아난 아내가 있었다.
남편은 처가를 찾아가 장인 장모 앞에서 한달에 한번만
낚시가겠다고 맹세하고는 다음날 아내와 함께 올라오기로
했다. 화가 가라앉은 아내는 밤참을 들고 남편이 자고 있을
건넌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남편이 사라지고
없었다. 처가 식구가 다 깨어나서 사위를 찾아나섰다. 30분
뒤 그는 마을 뒤 작은 저수지에서 발견됐다. "그새를 못
참고 또 낚시인가!" 장모의 호통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퍼졌다.

충남 아산시에서는 더 포복절도할 사건이 있었다. 가정 주부
Y씨는 밤중에 욕실로 들어갔다가 하마터면 혼절할 뻔했다.
깜깜한 욕조에서 시퍼런 도깨비불이 빛나고, 그 앞에는 검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대자 한손에 낚싯대 토막을 든 사내가 어슬렁
거리며 걸어 나왔다. 겸연쩍은 표정을 한 남편이었다.
그는 낮에 낚아 욕조에 넣어 둔 향어들을 낚아보려고 케미컬
라이트(낚시찌에 붙이는 야간 조명 도구)를 켠 채 '밤 낚시'
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낚시를 말리기 위해 아내는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지난 96년 여름 경남 합천호에선 기묘한
행장을 한 어느 낚시꾼 덕분에여러 사람이 웃을 수 있었다.
두 살짜리 아이를 들쳐업고 낚싯대를 펴든 이가 있었던
것이다. 창녕읍에서 왔다는 그 사람의 아내는 남편이 낚시를
못 가게 하려고 일부러 갓난아기를 집에 두고 외출했다.
설마 남편이 아이를 업고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집안에 낚시꾼이 있을 경우 낚시는 생활 전반에 침투한다.
베란다의 빨래를 말릴 자리에는 낚싯대 토막들이 놓여 있고,
냉장고에는 혐오스러운 미끼가 보관된다. 간혹 냉장실에
넣어둔 지렁이가 기어나오기도 한다. TV 앞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서로 낚시 비디오와 만화 영화를 보겠다고 다툰다.
열대어 먹이가 없어져서 찾아보면 남편의 미끼가방에서
발견되며 콩가루와 보릿가루는 식품으로보다 낚시 미끼로
더 많이 소비된다.

낚시인은 새로운 낚시 상품이 나오면 사고 싶어 밤잠을
설친다. 쇼핑광들은 낚시 매장을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의
하나인데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기 때문에 늘 빚에 허덕
인다. 배스 낚시가 한창 붐을 타던 6년전, 서울의 루어
낚시 클럽인 S낚시회 회원 O씨는 당시 유행하던 밸리
보트(자동차 타이어처럼 생긴 미니 보트)를 큰 맘먹고
구입했다. 27만원을 주고 샀지만 아내에겐 5만원 줬다고
말했다. 그러고서도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내가 그 앞에 7만원을 내보이며 자랑하는
것이었다. "여보, 웬 고물상이 왔는데 그 고무 튜브를
보더니 7만원에 사겠다지 뭐예요. 그래서 얼른 팔아버렸죠.
2만원은 내 몫이니까 이걸로 새 걸 하나 또 사세요."
아내가 건네주는 5만원을 보고 O씨는 기가 막혔지만 내색을
못했다.

낚시를 즐기기에 시간이 빠듯한 샐러리맨들은 평일에
낚시를 가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댄다. 낚시는 다른 취미와
달리 물고기가 잘 낚이는 시기를 놓치면 놈들이 어디론가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고기가 잘 낚인 다는 정보를 들으면
꾼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때문에 유난히 집안에 우환이
많아 결근, 조퇴가 잦은 것이 낚시인의 공통점이다. 주로
친척이 상을 자주 당하며 아픈 사람이 속출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둘러댔다가 사표를 쓴 사람도 있다.

광주에 사는 직장인 K씨는 96년 겨울 전남 신안군의
가거도로 3박 4일 바다 낚시를 갔을 때 고기가 너무 잘
낚이는 바람에 "폭풍 주의보가 내려 하루 늦게 철수한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 들통이 났다.

낚시를 더 많이 즐기기 위해 외근이 많은 부서를 희망하는
것도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울
명동의 중앙전화국에 근무하는 Y씨는 한달 출장 15일이
넘는다. "출장중에 틈틈이 낚시를 즐길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공무원 중에선 어촌이나 낙도 전근을
희망하기까지 한다. 북제주군 하추자도의 추자중학교 교사
K씨는 바다 낚시에 빠져 3년 전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전근을 거부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P씨는 지난해 겨울 바다 낚시에
입문했다. 바다 낚시꾼에게 선망의 대상이라는 감성돔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는 은빛 돔,겨울과 봄에
굵게 낚인다)을 낚기 위해 한번 출조에 13만원이나 되는
회비를 냈다. 토요일 저녁 9시에 출발하는 낚시회 버스를
타야 했는데 그날따라 야근이 걸렸다. 할 수 없이 일본
에서 삼촌이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회사를 빠져나왔다.
완도항에서 졸린 눈을 부비며 해장국을 전투 식량처럼
먹어치우고는 새벽 6시경 낚싯배에 몸을 실었다. 기름
냄새 나는 선실에서 1시간 동안 멀미에 시달리고서야
비로소 청산도라는 섬에 닿았다. 푸른 바다를 보니
금세라도 돔이 낚일 것 같았다. 그러나 P씨는 한마리도
낚지 못했다.

선배 낚시인들은 "이 정도 꽝은 예사"라며 허탈해하는
P씨를 달랬다. 오후 2시에 철수선을 탔다. 올라오는
휴일 도로는 정체가 극심했다. 월요일 새벽 1시에야
서울에 도착했다. 아내는 새벽에 지친 몰골로 들어서는
그를 보더니 아예 말도 하지 않았다. '7시간 낚시에 감성
돔 한두 마리의 손맛을 보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투자
하다니…'.

지루한 조행길에 지쳐 바닷가로 이사한 낚시꾼도 있다.
경기도 안산에서 호프집을 경영하던 C씨는 3년 전 바다
낚시에 빠지더니 올 봄에는 전남 여수시로 이사가버렸다.
제주시에 사는 Y씨는 남원이 고향인데 제주도에 놀러갔다
그 천혜의 낚시 여건에 반해서 눌러앉았다. 지금 그는
이름만 대면 낚시인들은 다 아는 돌돔 낚시 명수가 됐다.

꾼들의 집념은 열악한 낚시 환경 속에서 더욱 빛난다.
포항 해병대에서 복무한 대구 낚시인 Y씨의 군대 이야기.
병장 시절 소대장을 꼬드겨 '일월지'라고 하는 부대
한가운데 연못에서 몰래 낚시하다 대대장에게 들켰다.
두 해병은 그날 연병장에서 묵은 음식까지 게워낼 정도로
얼차려를 받았다.

그러나 Y 병장 눈에는 못다 낚은 붕어만 아른거렸다.
결국 낚싯대를 체육복 바지에 숨긴 그는 순찰이 뜸한
휴일을 틈타 일월지로 재침투했다. 훈련으로 다진 날렵한
몸놀림으로 포복, 약진을 거듭해 연못가 갈대숲으로 뛰어
들었는데 그곳에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먼저 와 있었다.
낚싯대를 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대대장이었다. 얼결에
"충성!" 경례를 붙이기는 했지만 Y 병장은 '이제는
죽었구나' 두 눈을 감았다.

그러나 대대장은 기가 차다는 듯 웃더니 옆에 와서 낚시
하라는 것이었다. 그후 Y 병장은 대대장의 낚시 스승이
됐고 제대할 때까지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는 지금
대구시에서 유명한 낚시점을 경영하고 있다.

광주 낚시인 P씨의 방에는 교통 사고를 당한 직후
섬진강으로 낚시갔을 때 사진이 한장 걸려 있다. 사진
속 P씨는 목발을 짚고 당당하게 웃고 있다.

전남 여수시의 M씨는 직장에서 일하다 오른쪽 팔목이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응급실에 들어선 직장
동료와 가족들을 향해 다급히 외친 그의 첫마디는
오늘날까지 여수 낚시인들간에 회자되고 있다. "혹시
낚시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낚시를 매개로 사업상 교분을 쉽게 트고 이웃을 빨리
사귀는 사람도 많다. 서울 구로구의 한 인쇄소에
근무하는 H씨는 부장의 조우 역할을 해오면서 문책당할
위기를 여러 번 넘겼다고 자랑한다.

낚시 인구 밀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남에선 낚시인
행세를 하는 세일즈맨들이 상당히 많은데 판매 신장에
실효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낚시인을 만나 뜻하지 않은 도움을 얻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의정부 낚시인 B씨는 중부고속도로
에서 과속하다 경찰에 걸렸다.

"모처럼 낚시가는 길이라 들떠서 그랬습니다." 그 말에
경찰은 그냥 보내줬다. 그 경찰도 낚시꾼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회사원 J씨는 낚시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강남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다 뜻하지 않은 횡재를 했다.
낚시 배낭을 본 개인 택시 기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길
래 "충북 진천군의 초평지가 터졌다(아주 잘 낚인다는
뜻의 낚시 은어)고 해서 밤 낚시를 들어간다"고 대답
했더니 잠시 신호를 기다리던 기사가 즉석에서 동행을
제의, 공짜 택시를 타고 편안하게 낚시터까지 갈 수
있었다.

낚시는 병으로 치부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등산,
바둑, 골프등의 취미에 서 낚시로 전향하는 예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도박을 하던 남편
에겐 낚시를 취미로 권하면 십중팔구 도박을 끊게 된다.

현재 한국의 낚시 인구는 약 3백만명(1년에 6회 이상
낚시를 나가는 인구)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웃 일본은
1천8백만명을 자랑한다. 이들은 대부분전염 초기인
1∼2년째에 가장 광적인 조행을 일삼는데 3∼4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비로소 가정 대소사에
관심을 보인다. 낚시인이 이성적으로 출조 여부를
판단하려면 5년 이상 낚시 경력이 필요하다. 이때까지
아내와 식구들은 중독 증세가 쾌유되기를 빌수밖에
없는데 스스로 나아지기 전까지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방만이 유일한 방책이에요. 평소 내성적인 남편에게
멋모르고 낚시를 권했다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부산에 사는 가정 주부 J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