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건을 아시는 분도 계실줄  압니다.
그러나 안전사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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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4~15일 밤!
팀제이에프 송원 고문님을 험한 바다에서 잃었습니다.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낚시인 모두의 아픔이라고
생각되기에 이 글을 올립니다.
항상 안전에 유의하시고 위험에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갯바위에서 위험을 느낄때는
소방안전본부에 구난을 요청하실 것을 전해드립니다.
국번 없이 119번!

그 날...
그날의 처절함을 애써 기억해 내려하지 않아도
그날의 잔상이 계속 머리에 박혀 나를 힘겹게 하고
바삐 돌아가는 회사에 소홀할 수 없는 의무감과
송원 형님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던 팀원으로서
그날의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글로 올려야 하는
책임감이 저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힘들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몇 날 몇 시간 동안 고민하면서도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한 건
팀원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회원들께 여러가지 도움을 준 순수했던 의도가
자칫 퇴색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잘 정리되어
운명을 달리하신 고인과 유가족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좋은 소식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항상 낙천적이고 부드러움으로 다가와 온갖 궂은일을 보살펴 주며
팀의 맏형으로 우리 모두에게 존경받던 송원 고문님을 생각하니
혼자 살아돌아온 제가 너무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이렇듯 증인이 생존해 있으니
님의 마지막 가셨던 길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겁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극락왕생을 빕니다.

구조요청 시각, 구조선의 출발 시각 등은
진행중인 수사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각 사건이 벌어진 시각은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혀둡니다.

당시 출조는 경기지부 송원 고문님, 서울지부 나,
강원지부장 Y님, 대전지부 B님 이렇게 4명이었습니다.
8월15일 광복절 휴일날 통영 소재 구을비도에서 당일 야영낚시를 하기로 결정하고,
8월14일 각자 연고지에서 출발해 통영에 있는 M낚시점에 집결,
오후 3시에 배가 출발하는 번개출조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통영 현지에 거주하는 팀원인 H님이 고문님 이하 우리들을 위해
본인의 시간을 할애해 출조를 함께 도와주기로 하였습니다.

출발 전 H님의 댓글에서
야영 당일날 밤에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비 옷등 단단히 준비하라는 글을 염두해 두고 통영으로 향하는
송원 고문님의 운전석 옆자리에서 기상청에 전화했습니다(055-131).
"통영, 남해, 거제 등 경남 서부 남해안 지역의 일기예보입니다.
오늘은 오후 늦게부터 내일 오전까지 30~80mm의 많은 비가 예상되오니..."
이 때가 오후 1시30분경,
상황은 오전보다 진전된 건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를 걸고
송원 고문님의 차는 목적지 통영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낚시점에 약간 바쁘게 도착한 탓에 반가운 만남은
달리는 배 안에서 마저하기로 하고 밑밥을 개고 미끼를 준비하고
음료수에 초장에 먹을거리를 챙겨넣는 등 모두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낚시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마음속 한 편엔 대물의 손맛을 기대하며...

3시가 좀 지났을까?
낚싯배는 예정된 시간보다 좀 늦게
우리 일행 4명과 H님, 현지인 한 분을 태우고 출발을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전 회원이신 F님이라네요.
달리는 뱃전에서 한려수도의 절경에,
오랜만에 만나는 님들과의 조우에,
풍성한 조과의 기대감에 짧은 시간 잠시 행복했었습니다.

배가 점차 난바다로 향할수록 예보와는 달리 높은 너울이 일렁이고,
처음 계획했던 구울비도는 내리기가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바람과 너울의 영향이 없는 소지도 뒷편 안쪽과 홈통 포인트를 선정해 주었습니다.
F님은 혼자 내렸고,
그 무거운 야영 장비들을 H님이 일일이 날라주며
홈통쪽에 강원지부장 Y님과 B님이 내리고,
뒤이어 고문님과 제가 내렸습니다.
H님이 제작한 찌의 사용법을 배우고저 함께 하선을 부탁해
찌 사용법도 익히고, 별 조황도 없이 시간이 그렇게 흐를때
바람도 자고 너울도 조용해지더군요.
우리 포인트 조금 건너편서 선상 낚시를 하던 선장님이
날씨도 괜찮아 졌으니 포인트를 옮기자는 제의에
고기만 안나올 뿐 야영장소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포인트를 옮겼습니다.

낚싯배는 소지도 동쪽 홈통포인트로 이동,
홈통에 강원지부장 Y님과 대전의 B님이 내리고
뒤이어 F님이 내렸는데, 이 포인트가 지난 주에 강원지부장 Y님과 H님이
낚싯대를 세우지도 못하고 터트린 곳이라고 하더군요.
마지막 우리 한 포인트만 내리면 되는데
자리가 없던 모양인지 배는 난바다 쪽으로 향하고
난바다쪽 곶부리의 이름 모를 떨어진 여에 내려주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동쪽 끝바리'라 하더군요.
이곳이 死지가 될줄이야...
암튼 배가 몇시에 다시 올지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지만
새벽 3시에 오는 걸로 결정짓고
상황이 안 좋으면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배가 떠났습니다.

하선 후 주위를 둘러보니 직벽에다 피할 자리도 없는
협소한 포인트가 불길한 예감을 주었지만,
어쩔 수 없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낚시가방과 아이스박스 등 장비들을
한곳에 모아 정리해 놓은 뒤에
고문님은 바깥쪽 자리에서, 나는 안쪽에서 낚시를 하며
상사리, 전갱이 등 잡어들의 입질에 잠시 불안감을 잊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
입질도 잠시 주춤하고 시장기를 느낄 쯤
천둥 번개가 간헐적으로 번쩍이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하더군요.
잠시 비옷으로 갈아입고, 밤낚시를 대비해
낚아놓은 잡고기와 라면으로 소주잔을 나누며
시장기를 때웠습니다.

"휴! 천둥 겁나게 치내요"
언제나 그렇듯 특유의 미소로...
"천둥맞고 죽은 사람이 행복한 겁니다"
"예?... 왜, 왜요?"
"고통없이 죽을 수 있잖아요"
"아, 예..."
"형님! 한잔 받으시죠"
"그럽시다"
"이제 그만 말씀 좀 낮추십시요"
잠시 잔을 비우고...
"그래! 깜장소 한잔하지"
처음이었습니다.
3년 넘게 알아온 조우이며 존경스런 인생의 선배님이기에
수많은 번출과 번모에 자리를 함께 할때마다
"형님, 반말로 하십시요"
"아, 예"
끝내 안 그러셨지만 그날 처음으로 제게 말씀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그 잡고기와 라면에 함께 나눈 술잔이
송원 고문님과의 마지막 만찬이 될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20시 45분, 기상청 ARS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영, 남해, 거제 등 경남 서부 남해안 지역의 일기예보입니다.
오늘 오후 늦게부터 내일 오전까지 천둥 번개를 동반한
50에서 100mm의 많은비가 내리겠으며,
곳에 따라 돌풍이 부는 곳도 있겠으니 주의를..."
예보가 안 좋으니 불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시야를 둘러보니 이미 칠흑같은 어둠 속에
세찬 바람과 천둥 번개, 쏟아지는 비 때문에
이미 낚시는 불가능했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21시 08분,
다시 한번 기상청에 전화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비를 피할 장소도 없고 오는 비를 그대로 다 맞아야 하는 상황
우비를 입은 상태에서 고문님의 우산을 함께 쓰고,
야영용 2인 메트레스를 우비 삼아 무릎 위를 덮었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잠시 후 고문님이 홈통에 내린 Y님께 전화하며
그쪽 상황을 물어보더니
그쪽엔 동굴이 있어 비를 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너무 부러웠습니다.
이제는 너울도 더욱 높아져 가는데...

21시 50분 경, 경남지부장 D님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쪽(진주)엔 비가 엄청 와서 차문이 안 열릴 정도라
걱정스러워 전화 했다는 말과
상황이 안 좋으면 철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1시 58분, 불안한 마음에 경남지부장 D님께 전화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배를 부르면 들어올 수 있냐는 질문에
상황이 안좋으면 당연히 배가 들어와야지
시간이 뭐가 중요하냐는 내용의 통화였습니다.
너울은 점차 갯바위를 넘쳤고,
22시 반경쯤 H의 전화가 왔습니다.
상황을 물어보길래 배가 들어와야겠다는 내용의 통화였습니다.
참고적으로 H님은 출조를 도와주는 분이었고,
우리는 선장의 전화번호를 몰랐기에,
H님께 부탁해 H님이 연락을 취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제는 비, 바람, 천둥, 너울도 높아져서
한시 바삐 이곳을 떠나는게 상책이었습니다.
23시 10분경 또 다시 H의 전화가 왔습니다.
휴대폰으로 너울의 소리를 들려주며
이 소리가 들리냐며 선장께 연락해서 철수를 요청했습니다.
너울이 이제 쉽게 갯바위를 넘쳤고
그렇게 쪼그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23시 43분, 경남지부장 D님께 전화해
상황이 너무 안좋으니 배를 들여보내 주고
만약에 불가능하다면 해양경찰에 신고해
구조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3시 56분 H님께 전화해 배가 들어오고 있냐는 질문에
아직 못들어가고 있다고 해서 급박한 상황이니
선장께 연락해서 배를 들여 보내주고
해양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부탁하며 끊었습니다.
옆에있던 송원 고문님도 하루방님과 통화하며 놀랄까봐 그런지
심각하지 않게 상황에 대하여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다에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져갔고
우리가 앉아 있는 곳까지 너울이 넘쳐오고 있었습니다.
24시 50분경 그토록 기다리던 H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지금 배가 들어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어! 그래 제발 빨리 좀 와줘"

아! 그토록 기다리던 배가 온다니
지옥에서 하나님이라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너울은 우리가 있는 자리까지 퍽퍽 저음의 웅장한 소리로
넘쳐서 불안감은 더 해가지만
배가 온다는 소식에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몇 십분후면 구조된다는 생각에...

01시 30분 가까이 되서 송원 고문님이 하루방님께 전화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를 물어 보는데
그 당시 상황보다는 조금 좋게 설명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밤 늦은 시간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높은 너울에
배를 접안 시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01시 40분경 H님으로부터 전화!
배가 고장이 나 해양경찰에 신고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내 휴대폰은 H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먹통이 되고,
뒤이여 01시 45분경 송원고문님의 휴대폰도 먹통이 되고.
희망없는 상황에 허탈해 하고 있는데
뭔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렸습니다.
바로 위에 올려놓은 아이스 박스, 낚시가방, 밑밥통, 보조백 등이
단 한개도 안 남고 순식간에 바다속으로 쓸려들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너울이더군요.
그리고, 아까운 생각도 없었습니다.
과연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것만 생각났습니다.
이때가 02시 경이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에 이 무시무시한 너울을 피할
안전한 곳을 확보하려고 후레쉬를 비춰 주위를 살피다 보니
바로 2,3m 위에 두명 정도가 겨우 누워서 있을 만한
살짝 패인 자리를 발견하고 너울을 피해 겨우 올라가는데,
제 노란색 두레박 하나가 덩그런히 놓여 있었고
송원 고문님이 급히 조끼 주머니에서 프랜드 두개 중 한개를
제게 주셔셔 서둘러 각자 상체에 묶고
돌틈에 프렌드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두레박 끈을 각자 잡고 있는 상태에서
송원 고문님은 누워서 발로 체중을 싣고 버티고 있고
난 엎드려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너울만 공포스런 굉음으로 퍽퍽 쳐대고,

얼마나 버텄을까 ?
뭔가 "퍽"하는 거대한 소리에 잠시 정신은 놓치고 보니
내 몸이 날아가다 무언가 강하게 나를 당겼습니다.
아까 모든 장비를 한번에 날려버린 그 보다 훨씬 강한 너울이
나를 정면으로 쳤는데 송원 고문님이 주신 그 로프가
나를 잡아준 것입니다.
바로 2~3미터 밑이 골창인 상황에서
너울을 피해 겨우겨우 조금 전 있던 곳으로 기어갔더니

이럴수가!!!
송원 고문님이 안보였습니다.
순간,
헉! 나도 모르게 덜컹 내려앉는 호흡에,
온몸엔 소름이 끼치고
"형님? 형님? 형~님~"
칠흑같이 어두운 난바다를 바라보고 절규했습니다.
너무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내 앞에서 벌어져서
어떻게 이럴수가 ?
어떻게 내 앞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눈물도 안 났습니다.
너울 소리를 피해서 뭔가 소리가 들릴가 싶어
잔뜩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 소리도...
"아... 아... 형님이 형님이 돌아가셨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그때가 02시 30분경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너울은 미친듯이 갯바위를 넘쳐버리고
칠흑같은 한 새벽에 눈도 못 뜰 정도의 폭우와 바람
하나밖에 없는 후레쉬가 꺼져버린 순간엔
나의 한가닥 희망이 사라져 가는 듯 했습니다.
이제는 살아야겠다 보다는
내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좁은 돌틈,
난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약 15도쯤 경사진 갯바위 위에서,
너울을 정면으로 맞으며 사격할때 엎드려 쏴 자세로,
가능한 온몸을 갯바위 바닥에 밀착시켜서
양쪽 손목엔 두레박끈을 네겹으로 칭칭 감아
한뼘도 안되는 갯바위 돌출부에 휘어감고
발바닥 높이만큼 돌출된 갯바위 돌틈에 발을 끼워
체중을 의지하며 송원 고문님이 주신 로프를
허리에 감고 버텼습니다
언제 구조하러 올지 모를 해양경비정의
비상 싸이렌에 귀 기울이며 죽기 살기로 그렇게 버텼습니다.

너울이 허리에 감고 있는 로프를 자꾸 다리까지 끌어내려
더 위험해서 로프를 풀러버리고 오로지 손목에 감은 두레박 끈과
발바닥을 돌틈에 밀착시켜 버텼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두눈 부릅 뜨고 너울을 바라보다 내몸 가까이 왔을 때
양쪽 손목에 칭칭 감은 두레박끈이 벗겨지지 않게
밑으로 잡아당김과 동시에 발바닥에 힘을 주며
언제 올지 모를 구조선을 기다리기 위해
체력을 아끼려고 그렇게 너울을 정면으로 처다보며
눈을 부릅뜨고 보았습니다.

잠시 너울도 지쳐 쉴때엔,
눈물나는 사투와 아랑곳 없이 잠시 저에게 평화를 선사했습니다.
멀리 난바다 끝 수평선에 일정한 간격으로 떠 있는
3대의 배는 유조선일까? 아님 무역선일까?
칠흑 같은 망망대해 난바다에
초라하다 못해 처절한 내 몸뚱이를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이
그날의 저의 유일한 실날 같은 희망의 불빛이었습니다.

잠시 조용하다 미친듯이 처올라와 내몸을 퍽 치고 사라질때마다
우비 상의 지퍼와 구명조끼 지퍼를 한번에 내려 버려
한기를 느꼈지만, 몇번씩 겨우겨우 올려보다
하도 너울이 자주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감당못할 엄청난 공포속에서
그 칠흑같은 바다 한 가운데서
나 혼자만이 해결해야 할 그 상황에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
아!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가 ?
큰아들 녀석 군에 가 있는데 부친상을 당하면
휴가는 나오겠구나.
병원 복도 끝에서 서성이는 큰아들의 뒷 모습을 상상하니,
처참한 생각에 이를 악물고 너울에 버텼습니다.

시간이 흘러 03시 30분이 넘을때
내가 엎드려 있는 갯바위 밑에서 미친듯이 넘실거리는 너울을 보고
해양 경비정이 들어오더라도 결코 접안할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직감하고는 극도의 절망감이,
너울이 극에 이르러 본섬 직벽을 집어 삼키듯이 넘고
내가 버티고 있든 여는 온통 흰색 너울로
검은색 갯바위가 한점도 안보일 정도로 쳐댔습니다.
한 마디로 처절했습니다.
혼은 빼는 듯한 광란의 너울을
난, 그날 처음 보았습니다.
내 몸뚱이는 국기봉에 매달린 깃발처럼 돌출부에 의지한
두레박끈을 죽을 듯이 잡고 있었지만,
하체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너울에 밀려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너울이 칠 때마다 충격으로 인해 플랑크톤인가 발광물체가
내 온몸에 뒤집어 씌워서 몸뚱이는 빛나고
양손으로 움켜쥔 두레박끈이 벗겨지면
모든 것이 종결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렇게 04시 40분을 꼭지점으로
너울과 파도와 바람과 폭우가 극에 달했습니다.
더 이상 쓰자니 자꾸만 그날의 악몽이 생각나
여기서 적당히 마무리 하렵니다.

어둠이 걷히고 너을의 크기도, 횟수도 서서히 적어지고,
시커먼 먹구름 틈 속에서 너무도 선명한 태양이 비친 건
새벽 05시경.
살면서 이렇게 고마운 태양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배를 기다리며 두레박끈을 조금은 느슨하게 하고
엎드려 있는데 멀리서 내쪽으로 배가 왔습니다.
이제서야 구조하러 왔구나 싶어 기분이 몹시 불쾌했지만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라 싶어 얼른 일어서서 목터져라
"배! 배! 배!" 하고 고함치는데
배가 그냥 지나 갔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화가 나더군요.
다시 한번 불렀습니다.
"배! 배! 사람이 실종됐단 말이다. 실종! 배!"
이때가 05시 30분경이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구조된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모르는 배를 불러
그 배에 탄 것이지요.

그제서야 배를 대줄 때 송원 고문님의 자리를 보았습니다.
바위틈 단단히 고정된 프랜드에 연결된 부분엔 허리에 감았던
그 로프 끝부분이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졌던 것입니다.
형님이 주신 그 프랜드가 없었다면 저 역시
이 시간 이런 글을 못 남겼을 것입니다.

한자 한자 써내려가기 위해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그날의 훈장과도 같은 팔의 상처가 책상을 스치면서
저에게 통증을 가져다주지만
이정도의 고통이 송원 고문님 유가족들의
아픔에 비할바 되겠습니까?
저는 송원 고문님의 마지막 삶이
단순이 개인의 잘못이나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것이 밝혀지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너무 장문에 글을 걸쳐 쓰다보니
마무리가 많이 미흡하다고 느껴지는군요.
진실은 오로지 진실일 뿐입니다.
* 개굴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9-03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