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연(因과 緣)
                            - 佑命/林吉道-
  
「내가 그대를 만날 줄 몰랐듯이
그대도 나를 만날 줄 몰랐으니
세월(歲月)인들 맺어지는 인연을 어찌 알리요

歲月따라 흐르다보니
옷깃이 스치듯 기약하지 않아도
맺어진 인연(因緣)인 것을

언젠가 옷깃을 스치며 또 다시 만날지
그대로 이어지는 인연이 될지 그 뉘라 알리요

모르는 歲月이 흐르듯이 인연도 그렇게 흐르는 듯
행여 짧은 인연이라 한들 내 뉘를 탓하리요

다만 일체 중생(衆生)은
인(因)과 연(緣)으로 생멸(生滅)한다 하니
좋은 만남으로 귀하고 귀하기를 바라지요」

  
                                                                    
  

시간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지난 글들을 하나 둘 읽어 보자니
‘인연’이란 말이 새삼 눈에 많이 띈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는
말도 또한 있거늘, 그저 불가의 한번스쳐간 옷깃인연에 조차
연연해 했던 나의 한 해 한 해였던 건 아닐런지.

어느 해들, 어느 시점들에서 한번 맺어진 인연,
그 일부분은 이렇게 햇수 하나 더 넘기며 계속 연륜을 쌓아 가겠지만,
지금껏 그랬듯 게중엔 역시 시간과 함께 하나 둘 바람처럼
그저 그렇게 스쳐가는 인연으로 끝나게도 될 것이고,
더러는 맺지 말았어야 할 후회로운 연분으로 남기도 할 것이고,
어쩜 다행히도 극히 일부는 평생 글동무, 마음동무,
인연 깊게 따뜻히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




새로운 인연.
그 형체없는 것을 찾아 부질없이 헤매었던 시기도 있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 이라는 것과,

옷깃을 한번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 하는것은
불가인이 아닌 일개 소인인 나자신에겐 불필요하게
소모적인 일 일뿐 이란 것을 깨닫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연 맺음에 너무 헤프지 않으리라.
지금 남아있는 몇 안되는 인연의 끈마저
끝내 끊어져 홀로 남게 된다해도
다시 새 인연을 찾아 나서지 않으리라.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막을 홀홀이 내리리라.
단 하나라도 오래오래 남는 인연 있다면 그것으로
내 사랑과 애정의 보람은 충분하다며 기뻐하리라.

언제까지나 그 인연(들)의 얼굴을, 목소리를, 실체를
아무것도 몰라도 좋을 것이다. 아니 영원히 모르고자 한다.
내 안의 그녀가, 그가, 그 친구가, 그 분이, 그 사람이
실체보다 더 연하일수도 연상일수도 있다.
그러나...그는 영원히 내 안의 그이어야 하고,
그녀는 영원히 내 안의 그녀,  그 사람, 그 친구, 그 분이어야 한다.
그렇게 내 마음 각각의 항아리에 곱게 담아두고 싶다.

우리가 설령
서로 만나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 기회를 정녕 고사하고자 하는 고집스런 마음이 드는 것은
글을 통해 사랑과 이해로 맺어진 인연이 그렇게 오래오래
변함없이 이어져 그 사람을 보지 않았어도 본 듯하고,
보아도 보지 못했을 그 내면의 깊고 고운 아름다움을
우리끼리 만큼은 영혼으로 보고 감지할 수 있어,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의 내 안에 담겨진 모습과 향을
처음처럼, 그리고 지금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픈 나만의
소망 혹은 욕심이랄까.  



  

우리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싫도록 만난다.
일터에서, 이웃에서, 각종 동아리에서, 또는... 우연히.
그러나 그렇게 맺어진 인연에서 우리가 얼마나
그들만의 독특한 향과 내면사상을 케취해 내고 있을까.
우리가 실제로 만나 눈에 담는 그 외적 이미지로 인해
그 내면의 모습과 향에 장님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시각이 가려진 만큼 소리와 냄새에 몇 배 민감하다는 시각장애인들.
시각적 고정관념이 비시각적 그것들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많이 보면 볼 수록 우리는 마음장애인에 가까워질 뿐이다.
상대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그 사람의 냄새와
그 사람이 내는 음 하나하나를 정확히 감지해 내는 그들의
민감한 영혼을 닮을 수는 없는 건지.




  
연(緣)없이 인(因)인들 저 혼자 어찌하겠으며,
인(因) 없는 연(緣)이 어디있으리.
그러나 그 사람의 향과 현을 하나에 온전히 담아
끊어져 버린 연(緣) 바로 이전의 공간에 현재진행형 기억으로 정지시킨다면.

어느 니의 “가슴속에서 떠나 보내고 싶어도 떠나지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처럼....”  말이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