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7 년 7월 6일
장소:명동 방파제
물떼:모름

금요일은 마음부터가 바닷가에 낚싯대를 드리워 놓는 꿈에 부풀어 있어 늘 부산하다.
내일이 주말 인지라 손맛, 입맛, 눈맛을 선사 하는 낚시의 즐거움에 이리저리 눈팅을 했다.
인낚.디낚.부낚을 빈대 잡을듯이 뒤비샤아도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조황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에 ~
동낚 사이트에 은빛 찬란한 고운 자태를 드러내놓고 앙탈거리는 칼치가 명동 방파제에
낚인다는 조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찌져묵고, 무쳐묵꼬, 덤으로 젓갈까지 담구는 칼치 ~

그렇다.
저거 한번 잡으로 가야지.
왼 종일 지도검색에다 명동 방파제를 A4용지에다 그려 놓고 울산 기점 명동방파제
거리까지 산출하고 JC,IC까지 그려놓고 보니 명동 방파제까지 다온 듯한 기분이었다.

대충 장비 챙기고 생각나는 지인들에게 바리 바리 쪼츰바리 할 듯 연락했다.
“진해명동에 칼치가 억수로 잡힌다꼬 도배 하는데 갈랍니꺼” ~
죄다 못간다 였다.
결국은 혼자 였다.

사실 혼자라는 중압감 때문에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도 왼 종일 명동방파제 지도 그린다꼬 엄청 애를 먹었는데 가야지의 양심과
오늘 아니래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양심과 충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꿀꿀한 것이 딱 마음에 들었다.
우충충한 날씨는 비가 내릴 듯 말듯한 날씨는 결국은 가자의 양심을 앞세웠다.

퇴근하자 마자 맡겨 놓은 밥인 냥 느닷없이 “밥두가” 였다.
마누라 “왈”
“어디 가는데 밥부터 챙긴능교”~

“진해 명동방파제 칼치가 많이 잡힌다꼬 하니까 고걸 낚아서 밥맛도 없는데 애호박 넣고
찌져 묵고 회 초장에 간을 놓아 회쳐서 묵고 남으면 젓갈 담아 입맛 한번 돋꿀라꼬
칼치 잡으러 진해 명동가찌 가야 한다“였다.

“이 시간에 진해까지 간다고 하면 무리지 싶픈데 내일 날새고 가면 어떻겠능교”?

이왕 자존심 내세운 칼을 칼집에 도로 집어 놓을 수가 없어서,
“칼치가 쇄리 뱉다 카는데 많이 잡아 올께“

그랬다.
그 눈치는 오늘 하루쯤 내곁에 있어 주라는 눈치였다.
산전수전 겪어본 30년 결혼 생활에서 오는 눈치의 의미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눈치를 뿌리치고 뒤로 한 채 명동을 향해 출발 한시각이 저녁 8시 쯤 되었다.
가벼운 마음에 CD에 담긴 흘러간 노래도 틀고 나름대로의 시간을 향유하며 명동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고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JC IC도 통과하며 나름대로 지도따라 오른쪽 핸들을 돌리며 직진하고
왼쪽 돌리고 가다보니 진해 명동방파제가 점점 가까워 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장유 IC부터 일었났다.
담뱃불 붙인다꼬 장유 IC를 미쳐 보지 못하고 직진 하고나니 가락이 나왔다.
다시 장유 IC를 가기 위해선 유턴을 할수 밖엔 없었고 9Km기름값에다 그것도 모자라
고속도로 주행비를 장유 IC를 위해 바쳤다.

모르쇠 지방 텃새에 비싼 값을 지불하고 25호 국도선을 찿았다
장유엔 국도 25호 선을 안내하는 안내판은 없었다

좌왕 우왕하며 큰 길따라 주행 하다 보니 갑자기 길은 2차선으로 좁아졌다.
그 2차선 좁은길은 십리길 마다 가로등 하나씩 밖엔 없었다.

다 된 밥에 재 뿌린다꼬 장유에서 헤멘뿌모 명동방파제까진 가긴 글럿는 갑다.
그래도 한번 끝까지 가보자......

참 지나다 보니 내 시야에 희미한 불빛이 들어왔다.
마침 그곳엔 외등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마트였다.

음료수 사고 담배한갑 사고 난 뒤
“아저씨 진해 명동 갈려고 하는데 이기 국도 25호선이 맞습니꺼”~
“맞심더 그런데 반대로 왔는데요 이쪽으로 가시면 도로 김해로 나오는 길인데요“
“아이쿠 두야!!!!그럼 어딜 가야 되는데요”~
“오든길 되돌아가서 창원터널로 가셔서 만인터널로 통과 하시면 곧바로 진해임더” ~

여기까지 왔어 포기 할순 없꼬 차를 몰아 창원 터널을 찾기 시작했다.
운행 도중에 불모산이란 입간판 하나가 시야에 확 들어 왔다.
지도검색에 유난히 강조한 불모산 거쪽인 갑다.
핸들을 불모산 가닥으로 잡았다.

가다 보니 비포장길 ~
이길이 아이지 싶푼데 그렇지만 끝까지 가보자는 심보가 발동을 했다.
역시 끝은 있었다.
그 끝은 불모산 산장 약수터였다.

이때부터 또다른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집으로 가자와의 양심과
사나아 자존심이 있지 여기까지 왔어의 양심과 또 충돌을 하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명동방파제를 찿아 가자 였다.

창원터널을 통과하고 만인터널을 통과하고 어느 주유소에 도착 기름을 넣으면서
명동 초등학교가 어딘냐고 물었다.

직진으로 가다보면 STS조선이 나온다고 했다.
그 길로 가다보면 초등학교가 나온다꼬 했다.
고가다리를 넘고 산 비야야 길로 들어 서다보니 팻말이 들어왔다.
명동....

오매불망!!!!
명동의 간판이 서치라이트 불빛속에 보석처럼 반짝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후,
어디서 낚시을하다가 나온 느낌의 청년에게 물었다.
“아저씨 명동 방파제가 어딥니꺼”
의아한 눈초리로 보는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벌써 밤 11시가 넘어 섯기 때문이었다.
“여깁더”

로마 축구경기장 같은 방파제
타원형 같은 방파제가 부러웠다.
시민 휴식공간을 최대한 배려한 행정능력이 탁월한 방파제였다.

바닷물의 속살 거림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도록 설계한 계단형의 방파제
두고 두고 자랑을 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방파제 그이름 명동 방파제.
발 아래 파도의 속살 거림을 손으로 만져 볼수 있도록 시민휴식 공간의 방파제였다.

여기까지 온다고 십껍했지만 울산 칼치 일인자의 저력을 보여줘야한다.
채비 샛팅을 했다.

안문다.
깔짝거리며 입수했다간 도로 올라오는 어신찌 ~
안돼겠다 싶어 관심 가져준 청년에게갔다.

“풀치네요” ~
“그렇심더” ~
“행암 아십니까”?
“모르는데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
“울산에서 왔심더” ~
놀라는 눈치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셨습니까”?
창원에 일쫌 보고 칼치가 낚인다꼬 소문듣고 한번 와 봤심더“였다.

가을에 오시면 씨알도 괜찮다고 친절하게 가르켜 주었다.
마음을 울리는 친절이 너무나 감동으로 전해져 전율을 일으켰다.

채비를 이리저리 컷닝하고 다시 채비를 했다.
역시 현지 채비가 최고여 ~
은빛 자태는 풀치나 칼치나 그 매끄러운 몸짓은 환상이다.

낚시 삼매경에 몰입하는 동안 “아저씨 이것하나 잡수고 하이소” ~
그것은 정성스럽게 포장된 샌드위치였다.
아 ~
이것을 어찌 표현하랴~
진해만의 인심이 겹겹이 포장되어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이때부터 양심은 또한번 저울질 하고 있다.
답례를 하자와의 양심과 거까짓꺼 샌드위치 한조각인데 와의 양심은 평심을 찿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었다.

결국은 답례쪽의 양심을 앞세워 마트를 찿았다.
시원한 캔 맥주 3병과 음료수 한병을 들고 나오면서 색다른 음료수가 눈에 띄였다.
혀 꼬부린 영어로 쓰인 커피였다.
캔 맥주 보다는 연인들 끼리 마시는 편이 좋을 것같아 바꾸어 지불했다.

총총 걸음으로 나오면서 명동방파제에 내가 왔다는 증표를 하나라도
남겨 두야 할뗀더 ~

그렇다.

여기까지 오면 얼마나 긴장되고 온 몸이 경색 되었든지 볼 일을 놓쳐 버린것이다.
그래~
넓은 바다에 울산 짠돌이의 오줌 줄기를 진해만의 넓은 바다에 한몸이라꼬 섞어 놓아야
겠다는 생각에 좌측여 은밀하게 깊숙이 묻어 둔 대포를 찿았다.

숨죽여 있는 대포를 꺼내어 수없이 장진한 대포알을 쏘는데 그냥 신발위에 뚝.뚝.뚝........
그것이 끝이였다.

한때는 물줄기가 저 바다 건너 까지 간다고 했는 데~
마른 장작에 화력 좋다꼬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였든 기억이 얻그제 같았는데 ~
낚시 한번 갈려고 하면 이것 저것 눈치보고 이양떨며 간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는데 ~

그때가 물줄기가 땅을 파도 한참 팠던 옛날이었지 아마 ~
알게 모르게 세월은 나를 훔쳐가며 이렇게 참담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커피를 건네주고 낚시를 했다.
잘 안되었다.
눈팅을 하면서 칼치낚시의 지존인 중리 미용실의 엽기적 칼치 채비법과
벽면 생선님의 마음을 비우는 이야기를 간혹 접하는 글마다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늘 마음에서 마음으로 끝나 버렸다.

역시 낚시는 마음을 비우고 현지 채비가 최고라는 것을 실감 한날 이었다.

가로등이 졸고 있다
늦은 밤인지라 여인들은 잘먹겠다는 손짓으로 인사를 건네고 어둠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다 가고 혼자였다.
온갖 망상들이 뇌리를 스쳐간다.
지나온 일들에 대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낚인 풀치 아홉 마리~
찌지고, 무치고, 젓갈까지 담군다꼬 큰 소리 뻥뻥치며 집을 나섯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집으로 돌아온 시각이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도 입맛은 봐야지~
얇게 설고 땡초넣고 비비고 돌린 칼치 회 ~
그맛은 안먹어 보면 모르지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재미의 결과는 역시 낚시는 즐거워 였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