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 전이었습니다.

흔들리는 전마선 위에서 느긋이 뱃전에 기대어 앉아 삽질의 상황을 즐기고 있으려니 백면서생님 하는 말.

"행님, 우리도 원도권 함 가보입시더.  맨날 동네만 뱅뱅 돌지 말고.  거문도라든지 그런데서 작대기 함 담가보기도 해야 될 거 아임미꺼."

가만히 생각해 보니 10월 20몇일 무슨무슨 체험학습일 어쩌구 하면서 쉬는 날이라 금토일 사흘 연휴가 되어있던 것이 생각 나더군요.

"그라까?  10월말쯤 거문도 OK?"


거문도 갔냐고요?

못갔죠.  거문도 가는 배가 타이어 빵구 났답니다.  ^^;;

거문도, 사량도, 욕지도, 거문도, 사량도, 욕지도......

몇 번이고 고민을 해 봐도 답이 나오질 않더군요.

거문도 선상 낚시를 해볼까 해도 밤새 "체험 삶의 현장"해야 한다는데다 어부도 아닌 이상 그리 많은 거 잡아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원래 낚시 스타일이 음주+가무+낚시를 즐기는 관계로 해서 일단 거문도 선상은 제외.

거문도 현지인 및 관계자(?) 몇 분에게 연락을 취해봐도 요즘 고기 안나온답니다.

삼부도에는 쪼매 나온다고는 하지만 갯바위 붙어서 술도 한 잔 못하면서 여유없이 낚시하는 건 딱 질색인 스타일이니 그리로 가기도 그렇고......

욕지도 가려니 전갱이, 고등어 외에는 구경하기 힘든데다 올해 볼락은 욕지도 전역에서 거의 전멸 수준이라 그러고.

사량도는 갈치와 볼락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씨알이 자잘하다고 하고.

출발 아침까지 거문도, 사량도, 욕지도, 매물도를 몇 번을 왔다갔다 했는지 모릅니다.

'에이, 모르겄다.  일단 출발하자.'

백면서생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첫날 사량도 갔다가 이튿날 욕지도 가자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만 가다가 다시 맘이 변해 결국 만지도로 갔습니다.

원래 개구리 뛰는 방향은 하느님도 모른다 카는......  ^^;;


가는 길에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늘 보기만 하고 지나쳤던 보리밥집에 들러보았습니다.



맛집/멋집 게시판에도 올리겠지만 제대로 맛있더군요.

옛날 반찬 없을 때 보리밥에 된장 몇 숟갈 떠넣고 나물 이것저것 넣어 쓱쓱 비벼먹던 그 맛 그대로 해서 4천원이었습니다.




든든히 채운 배를 안고 만지도에 입성했습니다.





따스한 가을 햇살과 가볍게 불어오는 미풍만 느껴도 낚시꾼들 마음 속의 쿨러는 가득 채워지는 법이죠.





느긋이 채비를 하고 캐스팅.

씨알 자잔한 전갱이 몇 마리와 보리멸, 볼락들이 올라오더군요.

일단 안주는 있어야 하니 쿨러에 물을 담아 잡어회 한 접시 분량을 모은 후 쓱싹 썰어 가볍게 페트병 소주 반 병으로 입가심을 했습니다.

오후 4시쯤 되니 물이 왼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다시 밑밥을 치면서 집어를 해가며 흘려보았지만 별 반응이 없더군요.

백면서생님이 옮기자고 한 위치에서 다시 캐스팅한지 2분도 지나지 않아 백면서생님의 찌가 스믈스믈 잠기더니 멋진 챔질에 대가 휘청합니다.

큰 씨알은 아니지만 대충봐도 방생급은 넘는 수준.

목줄이 1.75라 들어뽕하는데...... 빠자작!!!  2번대가 나가버립니다.

어쨌든 줄을 잡아 들어올려보니 대략 25는 넘는 크기입니다.

빵도 좋더군요.

연이어 제게도 입질이 이어집니다.

이놈의 사발찌(참고로 작년 연말 동낚인 송년의 밤에 당첨된 겁니다.  당첨복은 지지리도 없는 편이지요.) 물밑으로 들어가는 거 첨 봤습니다.

어쨌든 25는 충분히 되는 전갱이 한 마리.

날이 어둑어둑해진터라 더 이상 잡어 기대는 하기 어렵겠고 하여 뒷날 새벽 물때를 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얼른 "썽글어 묵을라꼬" 대를 접었습니다.




잡어 한 마리와 씨알좋은 전갱이 한 마리를 썰어두니 둘이서 소주 두어 병 할만큼 분량은 충분히 나오더군요.

역시 가을 잡어의 꼬들꼬들함은 정말로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백면서생님이 준비해온 삼겹살과 묵은김치로 두루치기를 해서 밥도 한 그릇 뚝딱하고 좌대의 따끈한 방에 앉아 있으려니 부러울 게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다가 볼락이 있나 잠시 살펴보는데 씨알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태풍으로 방파제 불이 꺼진 탓에 마릿수는 되지 않았습니다.

호래기가 있나 혼자 살펴보았지만 아직은 아닌 모양이더군요.




뜨끈뜨끈한 방에 등짝 붙이고 푸근히 자고 일어나 새벽 물때를 보았지만 별로였습니다.

술뱅이, ㅈ쟁이, 노래미......

쏨뱅이는 아마 백만 스물 세 마리는 잡았을 겁니다.

둘 다 완벽한 칼잡이는 아니지만 회는 대충 뜨는 탓에 조금 씨알 큰 술뱅이 올라오면 그 자리에서 쓱싹 양쪽으로 두 점 만들어 사이좋게 한 점씩, 볼락 올라오면 또 한 점씩, 술뱅이 좀 더 큰 거 올라와서 또 한 점씩......

나중에 배도라치 아주 큰 놈이 올라오길래 그놈도 썰어서 꿀꺽.

올라오는 족족 바로바로 썰어서 먹는 맛도 끝내주더군요.

입질이 없길래 가게에서 맥주 사서 남은 삼겹살 구어서 또 한 잔.


오후에 백면서생님이 확실한 입질을 받고 올리던 도중 얼굴도 못보고 바늘이 벗겨진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입질조차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은 약간 이른 듯하더군요.

아무래도 11월 말은 되어야 마릿수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오면서 다시 보리밥 한 그릇 든든히 먹고는 장구로 갈까 도산면으로 갈까 잠시 의논하다 사전에 계획(?)한대로 도산면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만약 호래기가 안되더라도 볼락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었죠.

6시쯤해서부터 호래기 채비를 담궈보았지만 입질이 전혀 없더군요.

볼락 바늘로 바꾸고 청개비 달아 아주 천천히 채비를 바닥에서 끌어올려보니 반가운 입질이 옵니다.

잠깐 사이 14~5되는 놈들로 다섯 수.

그런데 1시간 넘게 구석구석 볼락을 찾아보던 백면서생님 왈.

"볼락 입질 같은데 따라오다가 놓아 버리네.  이거 참..."

"어, 그거 볼락 아이다.  호래기다."

얼른 채비 바꾸고 민물새우 달아 던지니 후두둑 하는 것이 이건 완전히 감생이나 볼락 입질입니다.

대가 팍팍 처박기도 하고 옆으로 사정없이 째기도 하고......

던지면 5초 이내에 바로 입질이더군요.

호래기 처음이라는 백면서생님도 금새 요령 익혀 쉽게쉽게 끌어올립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20분 정도 잡고나니 입질이 약간 약아지더군요.

조금 있다 가족 한 팀이 오시는데,

"동낚인이시네요.  반갑습니다."

몇 마디 인사 나누고 보니 올 봄 호래기 150마리 잡았을 때 만났던 "문병훈"님 가족이시더군요.

돌게를 잡으러 나오셨답니다.

꽃게만큼 엄청 큰 돌게를 정말 많이도 잡으셨더군요.



덕분에 훈훈한 정이 담긴 따끈한 컵라면과 따끈한 커피를 오밤중에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대를 내려놓고 돌아서 있는 순간 다시 귓전을 때리는 소리.

"빠작!!!"

아, 그것은, 그것은... 수백마리 호래기와 그보다 몇 배 많은 뽈락을 사정없이 건져내던 3칸 민장대의 허리가 아작나는 소리였습니다.

할수없이 1호대에 호래기 채비를 묶고 어쩔수없이 이번에는 캐미를 달아 눈으로 호래기 낚시를 해보니 오히려 더 쉬운 것 같았습니다.

아쉬운대로 다시 십여 마리 잡고 있으려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또 들리더군요.

"어, 니 여서 머하노?  욕지도 안 갔나?"

"헐 싸부, 사량도가 여게가?"

사량도에 갈치 잡으러 갈거라던 싸부가 볼락 루어를 왔더군요.

코딱지만한 방파제에 동낚인만 세 팀이 모였더군요.

호래기 입질이 뜸하길래 대충 접고 철수하려고 살펴보니 대충봐도 백마리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씨알은 봄에 비해 2/3나 절반 정도 크기 밖에는 되질 않더군요.

싸부가 던져넣자마자 다시 호래기가 걸려올라오는 것을 보고 철수를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경이었지만 그래도 호래기 라면은 끓여먹고 자야지요.




낚시 스타일이 닮은 사람끼리 푸근하고 정겨운 가을 낚시 여행을 다녀온 뒷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 보았습니다.
profile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무늬오징어낚시 끊었음. 묻지 마셈. ㅠㅠ

요즘 맘 같아서는 두족류 낚시 전체를 끊고 싶음. ㅠㅠ

나는 당신이 말한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 볼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