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의 매력 이라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낚시인들이
한번 빠진 낚시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그 독특한 중독증상 때문이겠죠 ?

저 역시도 그때 당시 심한 중독증세에
빠져 있었던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공기맑고 풍경좋은 강에 나가서....
낚시대를 드리우면 세상만사를 다 잊을수가 있었고
권태롭고 무료한 백수의 남아도는 대책없는 시간을
죽이기에는 그만한게 없었죠, 무엇보다 취업이 안되서 받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서 피신하는 최고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스물댓살, 불같이 타오르는 정열을 잉어낚시로
대신하며 암담한 백수의 현실을 회피하는 안식처로
삼았던 것이죠.




그날,대물잉어의 측은한 눈을 본 이후로 쓸데없는 살생을
자제하게 된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것 없는 민물낚시의
일상이 계속 되었습니다.

여름도 막바지에 다다란 어느날,
여느때 처럼 친구 녀석들과 잉어낚시에 열을 올리느데
그날따라 피라미 말고는 올라오는 고기가 없더군요.
어쩌다가 딱한번 입질을 받았는데 "쭈레기"라고 불리는
30정도 되는 잉어 세끼가 한마리 올라왔더군요.

측은지심에 살려주고 싶었으나 친구놈의 성화에,
마침 안주거리도 없고해서 그놈을 매운탕으로 소주를
마셨습니다.

저는 원래 민물고기를 특히 즐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 안먹는것두 아니어서 뭐, 맛있게 먹었던 기억입니다.

그렇게 낚시를 마무리하고 돌아 오는길에 작은사고가
있었습니다.
친구녀석이 좁은 농로를 음주운전 하던중 가파른 경사에서
미끄러져 자동차가 논에 쳐박히는 사고를 낸거였죠.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날저녁 잠도 안오고해서 "뭐 잃을거리가 없나" 하고
책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생전 손이 안가던 오래된
집안의 족보책이 눈에 들어 오더라구요.

호기심에 족보책을 펼쳐 뒤적뒤적 거리던중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참고로 저의 성은 파평 윤씨입니다.
뼈대 있는 가문의 뼈대없는(?) 놈이지요..ㅎㅎㅎ

그날 저희집 족보책에서 읽은 간략한 내용입니다.
저희 집안자랑 이라고 욕하지는 마시고 재미로 그냥
잃어 봐주시기를..



-파평 윤씨의 유래-

파평윤씨의 시조 윤신달은 태조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개국공신으로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 장군은 별무반이라는 특수부대를
편성해 여진을 정벌에 나서 적군 5천을 죽이고
북진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자랑스러운 저의조상님들 이십니다...ㅎㅎㅎ)

-파평 윤씨의 전설-

파평 윤씨 시조 윤신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경기도 파평 파주에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날 이 용연에 구름과 안개가 서리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사람들이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되던날 "윤온" 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가운데서
금 으로 만든 괴짝을 발견하고 열어보니 한 아이가
금빛 찬란한 광체에 싸여 누워 있었다.
아이의 어께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있고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할머니는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으며 할머니의 성을 따서
윤씨가 되었다.

잉어에 대한 전설은 윤신달의 5대손인 윤관 장군의 일대기에도
나온다.
윤관장군이 함흥 선덕진 광포에서 전쟁중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강가에 이르렀을때 잉어떼의 도움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 하였다.
이번엔 장군의 뒤를 쫓던 적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잉어떼는 어느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파평윤씨는 잉어의 자손이며 선조들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


"..........#@$%$#@$$%%......"
그동안 숱하게 잡고 먹어왔던 잉어들을 떠올리며
그날밤도 쉽게 잠을 이룰수 없었습니다.

그뒤로 강에 안 갔냐구요 ?
한번 맛들인 낚시가 쉽게 끊어 지던가요 !
물론 또 갔습니다....ㅎㅎㅎ








나머지 마지막 이야기는 시간이 되는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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