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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아십니까?

2007.01.29 20:51

백면서생 조회 수:166 추천:1



젓가락 장단을 아시나요?




소위 '니나노 집'이라는 데가 있었다.
낡은 기와에 얹힌 '서울옥'이니 '부산옥'이니 하는 간판들, 두어 평 되는 홀에 드럼통 탁자나 나무 탁자 몇 개로 허름하기만 하고, 유리창에는 '왕대포' '안주일체' 따위가 써져 있는 집들. 내 기억으로 80년대 중반에 이런 집들은 모두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가본 게 엊그제 같은데 년수 따져보니 벌써 20년 전이군.


아무려나, 술 따라주는 여자라는 뜻의 작부가 그런 곳에 있었다. 한복을 입고 젓가락 두드리며 소위 '흘러간 옛노래'라고 하는 뽕짝을 불러주던 여인들. 보퉁이 하나 들고 무작정 상경해서는 겨우 창녀 신세만 면한 채 사랑에 속고 정에 울며 화장독에 겉늙어가던 여자들.

그런 여자들이 그립다고 말하면 혹 쉽게 몸 주고 정 주던 여인네들에 대한 마초적 동경이라며 어느 페미니스트의 일갈이 날아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리운 걸 어쩌누, 애틋한 걸 어쩌누. 이제 사랑에 속고 정에 우는 작부는 없다.
술집여자는 있지만 그런 순정파 작부는 없다.
명절날 술집에 가면 칙사 대접받는다는 송기원 선생의 체험 어린 노하우도 낡은 말이 되었다. 돈 훔쳐 달아난 고향집일랑 가볼 엄두도 못 내면서 휑뎅그렁한 골목길만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는 작부란 이제 없는 것이다.



춘자야 오빠 왔다, 호기롭게 들어서서는 왕년의 금송아지 허풍 좀 떨다가, 내 허풍 스스로 지루해지면 사랑에 열두 번도 더 울었다는 춘자의 옛날 남자 이야기도 좀 들어주다가, 손 꼭 잡아주며 어깨도 토닥여주다가, 그렇게 정 들어 세 번 가면 한번은 쉽게 외상도 긋고, 다섯 번 가면 바깥 약속도 한번 잡아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서 만나 교외로 빠지기도 하던 처자들, 그런 작부가 이제는 없다.

말하자면 작부가 사라진 게 아니라 순정이 사라진 것이겠고, 기다림이란 게 사라진 것이겠고, 속아도 또 믿어보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겠고, 하고 싶은 말 서리서리 쟁여놓는
애간장이 사라진 것이겠고, 꼭 돌아올게, 헛 약속이나마 남기지 않곤 못 돌아서던 '차마!'의 의리가 사라진 것이겠다. 하긴들 사라진 것들이 어디 그것뿐이랴.



21세기가 나는 싫다. 시외전화 걸기 위해 우체국에 가 접수시켜 놓고는 대기석에 앉아 우두커니 호명을 기다리던 시절이 나는 좋다. 문자 메시지 보낸 지 5분이나 되었는데 답장이 없다고 안달복달하는 21세기인들에게 무슨 순정을 기대하리. 작부를 그리워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들은 막막히 기다리고 아득히 울 줄을 알던 것이다.
그러니 이윽고 인생이 무엇인지도 알았으리.

백면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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