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이틀에 한번씩 아버지를 따라 고기잡이를 나섰다. 어린 나이에 밀려드는 잠을 못 이겨 반쯤 뜬 눈으로 부둣가에 도착 할 즈음 어느 새 잠은 달아나고, 초롱초롱 한 눈으로 노를 저어 어장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여가용으로 노를 젓는 세상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생계유지를 위해 노를 젓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새벽에 나를 깨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혼자 갈 수 있으니 잠을 더 자라고 말씀 하셨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날로 좋지 않으셔서 어장 그물을 혼자 끌어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고향인 경남 고성 동해면 앞바다에는 그 당시 도다리, 가지매기, 볼락, 장어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물고기들이 마을 앞 바다를 헤엄쳐 다녔다. 말 그대로 청정해역 그 자체였다.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고기잡이를 할 때에는 ‘이곳은 내 구역이다’라고 굳이 표시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어장 그물을 그냥 툭 던져 놓기만 해도 생선이 많이 잡혔었다.
그물망에 이끼가 덮어버리면 생선이 그물 투망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생선을 많이 잡기 위해서는 어장 그물을 수시로 걷어 씻어 줘야만 했다.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 무거운 그물은 어린 내가 흔들어 씻기에는 역부족이라서 씻다가 그만 넘어져 바다 밑 굴 껍질에 발 등을 크게 한 번 다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여름날 바닷가에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수시로 친구들과 옷을 홀딱 벗어 던져 버리고 물개처럼 수영을 하며 자연바다를 벗 삼아 놀기도 했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그렇기에 내게 ‘바다’라는 단어는 고달프고 힘들었던 것 보다 낭만이 흐르고 삶의 여유를 주는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도시에서 태어난 내 친구는 생선비린내 나는 바다가 역겹다고도 하지만, 그건 아마도 생활의 여유와 평화로움을 제공하는 진정한 바닷가의 매력을 못 느껴봐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는 때론 상품성이 떨어지는 생선들이 잡힐 때에는 경매를 하시지 않고 그냥 들통에 담아 집으로 가지고 오시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돌아가신 아버지께 참으로 죄송한 일을 나는 그 때 저질렀었다. 어린 마음에 매일 생선 손질하기도 싫었고, 또 온통 생선반찬이라 생선이라고 하면 지겹기도 하여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생선을 집 뒤 텃밭에 고스란히 묻어 버린 것이었다.
호미로 구덩이를 파서 팔딱팔딱 뛰는 생선을 땅 속에 그냥 부어 묻으면서 은근히 양심의 가책도 느꼈지만, 이 만큼의 생선이 없어졌다 해도 아버지께서는 모르실 것이라 생각하여 생선을 묻어 버린 내 행동에 오히려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얕게 묻혔던 고기가 땅 위로 올라와서는 이리 팔딱, 저리 팔딱거리며 밭 이 곳 저 곳에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아버지가 보시게 된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지켜보심과 동시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신 아버지는 "정성을 다하여 잡아 온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자식은 필요 없다" 하시며, 바작대기(지게를 지고 일어날 때 사용하는 나무작대기)를 휘두르셨고, 나는 쫓겨 앞산으로까지 도망을 갔었다. 날은 어둑어둑해져 오고 겁이 나 울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을 떠 올릴 때면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진다.
친정 집 마루에 앉아 어릴 때 울면서 내려왔던 그 산을 바라보자면 그 높고 무서웠던 산이 왜 그리도 지금은 작아 보이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난 그 때 아버지께 혼쭐이 났던 일 덕분에 지금은 작은 물건 하나라도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 좋은 생활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7남매에게 늘 인자하신 편이셨지만, 생선 경매로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자식에게는 함부로 돈을 주면 안 된다는 당신의 자녀양육방식 철학 때문인지 용돈 주는 것만큼은 참으로 인색하셨다.
나는 동생들에게 언니의 역할도 멋지게 해보고 싶고 용돈도 주면서 심부름도 시키고 싶은 마음에 잔 머리를 굴리기로 했다. 당시 13살이었던 나의 아이디어는 즉석 현금을 만들기 위해 생선을 경매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셔서 잡은 생선을 내게 주시면서 경매를 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던 터라 나의 현금 만들기 계획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20년 전의 생선 경매방식은 지금처럼 생선을 박스에 가지런히 담아서 경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흙바닥에 고기를 한 모둠씩 모아놓고 금액을 결정하던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떨리는 가슴을 안고 아버지 이름으로 만든 모둠 생선 옆에 ‘정숙자’라는 이름으로 작은 생선 모둠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러나 처음엔 경매를 하시는 분이 내 이름의 모둠 생선은 양이 너무 적다며 생선 모둠에 경매를 해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고 있는 나를 옆에서 지켜 보시던 어르신들이 경매사에게 경매를 해주라고 했고, "오늘 너 아버지는 안 오셨냐?" 하시면서 고생한다며 귀엽다고 내가 한 행동을 모두 비밀로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결과 난 그날 2500원이라는 거금의 영수증과 현금을 따로 받았다.
그 당시에는 아이스크림 한 개 값이 30원밖에 안 할 정도였으니 2500원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세상 부자가 부럽지 않았었다. 처음으로 거금을 만져 본 나는 내 동생에게 용돈을 줄 수 있다는 기쁨에 덩달아 신이 났다.
그 때 그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절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뿌듯함을 느낀다. 동생 4명에게 500원으로 멋진 언니, 누나 역할을 하고도 돈이 남았으니 이 세상 어떤 것도 부러울 것이 없던 때였다.
초등학교 아이가 그런 일을 한 적이 전혀 없던 터라 시세말로 어장 경매의 혁신바람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 혁신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남아, 지금도 친정에 가면 경매에 참여하셨던 어르신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시면서 "어, 2,500원! 친정 오냐?"라고들 하셔서 이것이 곧 내 이름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 시절은 워낙 생선 량이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경매 영수증을 보셔도 크게 차이를 모를 실 것이라고 어린 나이에 철석같이 믿고 행동에 옮겼던 것이었다.
훗날 알았지만 경매장의 일은 아버지도 아셨으면서도 모른 척 해주신 것이었고, 그 일이 일어난 뒤부터 우리들에게 용돈도 가끔 주셨던 지혜로운 아버지를 떠 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림과 동시에 아버지를 더욱 그리곤 한다.
20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그 당시 어촌 생활 덕분에 현재 나는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치아가 참 건강한 편이다. 사람들이 내게 치아가 참 튼튼해 보인다라고 말할 때 마다 난 칼슘 성분이 많은 생선을 충분히 섭취한 결과라고 사람들에게 감히 말한다. 덧붙여 나의 어촌생활의 에피소드도 들려주기고 하다보면 나 스스로가 신이 나 절로 즐겁다.
어릴 때 성장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중요시 여기는 일이다. 비록 새벽 4시에 힘들게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았던 어린시절을 겪었지만 내겐 그 시절이 결코 ‘힘들었다’라고는 회상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열심히 살았던 그 시절이 지금은 내 삶의 밑거름이 되어 현재의 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떳떳한 사회 복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때 그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검소함도 배웠으며, 근검 절약하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난 여름휴가 뿐만 아니라 가족단위로 놀러 갈 때면 휴양 장소로는 항상 잔잔한 파도가 넘치는 아름다운 바닷가를 선택한다. 바다를 낀 고향 덕분인지 넘실대는 파도를 보고 있을 때면 도시의 짜여진 출근 생활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어서 그 순간만큼은 참으로 행복하기 그지없다.
우리 형제들도 어렸을 적 생선을 먹고 자란 덕분인지 모두 건강한 편이다. 바다음식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 때문에 반찬 준비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저지방 고단백질인 생선위주로 준비하는 편이다.
지금의 내 고향은 애석하게도, 생선을 잡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어 도시로 떠난다고들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환경오염 때문일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그래서 사람들이 바뀌면 옛날 그 넘치던 생선들도 돌아 올 것이다.
지금은 당장 바닷가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내 어릴 적 바다의 향수를 만끽하면서 바다환경도 살릴 수 있는 등대지기가 되리라 오늘도 어김없이 꿈꾸어 본다.
댓글 7
행복
2006.10.09 12:30
잔잔한 감동이 밀려 오는 글 입네요.....
환경이 갈수록 좋아 지지 않으면 생선 고기 자체가 없어 질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기초생태계가 파괴되면 아무리 방류사업을 하더라도 일부어종에 국한되지요...
종의 다양성이 사라진 바다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수야 없지요...
개발에 의한 해수면의 매립부터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해안과 갯벌은 기초생태계의 보고인 동시에 오염물질을 자연 정화하는 소중한 자원이므로
돈으로 환산이 되질 않습니다. 또한 우리 어민들의 오랜 생활터전이기도 하지요...
우리 모두의 참여와 정부 부처의 환경에 대한 인식변화만이 우리 후손에게 죄를 짖지않는
길이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환경이 갈수록 좋아 지지 않으면 생선 고기 자체가 없어 질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