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낚인 운영의 정상화를 위한 수 차례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요청 사항을 지키지 않은 "추봉펜션호"회원에 대해 강제 퇴출 조치를 취하오니 일부 회원님과 다소 견해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낚인은 태생의 특성상 특히 점주회원님에 대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키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동낚인 설립의 취지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곳은 생태적 특성상 사용자 즉, 낚시인이 주인이되는 낚시 싸이트입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입장이지만, 그동안 있었고 지금도 알게모르게 자행되는 일부 점주들의 횡포에 대해 아뭇소리 못하고 당하기만 해야했던 우리 낚시꾼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낚시인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졌고 낚시인들 스스로에 의해 꾸려져 나가고 있는 사이트입니다.
그래서 점주님들을 위한 공간보다는 낚시인을 위한 공간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도록 한 것입니다.
점주 조황란에 올려진 공차는 사진, 외국인사진, 조황과는 아무 상관없이 양식참돔 썰어먹는 사진 등 조황과는 관계가 없는 이런 사진들은 누가 보더라도 낚시인에게 조황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올린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해당 펜션의 영업을 하기 위한 광고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지 펜션업을 하는 업자가 펜션을 선전하라고 만들어진 공간은 아닙니다.
그나마 서비스에 문제라도 없었다면 여러 회원님들을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았을지도 혹시 모르나 그러한 광고성 글을 보고 찾아간 사람들의 피해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던바 이러한 사항은 그 어떤 사이트보다도 회원들의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공간을 이용하여 도저히 묵과 할수 없는 행위를 한 것으로 이에 대해 해당 점주에 대해 사용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결정은 동낚인을 이용하는 낚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운용원칙에 따라 내린 결정이며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수많은 낚시인들을 위한 결정이므로 해당 강제 탈퇴된 추봉펜션호 회원은 동낚인 싸이트에 추후 다시는 들어올 자격이 없음을 공지합니다.
동낚인은 회원님 전부가 주인이기는 하나 개인이 운영의 주체인 관계로 사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모든 판단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의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판단 자체가 주관적임을 부인하지 않겠으며 그 판단이 틀릴 수 있음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 결정은 해당 회원의 활동이 동낚인의 정상적인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고 해가 된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므로 전술한 바와 같이 개별 회원님들의 견해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하며 이번 일은 이것으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이번 결정을 내리기까지 관련된 일련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난도 수용하겠습니다.
이장님......고생하셨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동네에서 제가 한잔 대접해도 될런지요....
그런 시간이 오길 기대하게습니다...
2007.06.16 10:39:30
보골장군™
개굴아빠님과 뜻을 함께 하겠습니다.
어떠한 비난도 감수하겠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에도 개굴아빠님의 강직한 힘이
이때까지 동낚을 '낚시인이 주인이 되는 공간'으로 지켜올수 있었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2007.06.18 18:12:01
호래기도사
찬성 한표 던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7.06.19 10:43:19
맨날 빈손
이번 회원 자격박탈조치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런 불미스런일이 생겨나질안킬 바랍니다.
어려운 결정 내리시느라 고생 하셨슴니다.
2007.06.19 11:05:01
전갈자리™
이장님 맘고생이 마났을텐데...
도움 되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7.06.19 13:01:15
하니아빠
얻을때의 기쁨 못지 않게
버릴때의 아픔과 힘겨움을 알고
감내하며 결단을 내릴 용기와 희생이
오늘의 동낚인이 있게한 리더의 용기라 봅니다.
2007.06.29 06:23:38
코난
“열 한살배기 조카의 잃어버린 하루”
그랬다..
어릴적 시골 초등학교의 관사를 전전하며 살아왔던 우리 가족에게 그 시골이 가져다준 평화의 안온함은 내 어릴적 사계를 풍요롭게 만끽하듯 지내온 안정된 시골 정서의 그것이리라..
스물여섯의 철부지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부지는 내 어릴적 전기불도 안들어 오던 오지, 동네 방네 다 서야했던 빨간색 버스를 타고도 나룻배로 한시간여를 사공이 배를 저어 도착 했던 낙동강의 어귀쯤, 함양, 거창, 산청, 진양, 깡촌을 전전하며 그 까까머리 기계충에 그나마 옷이라곤 일년에 한 벌뿐인 시커먼색 땟국물조차 냇가 빨래터에서 빨지 않으면 모를범직한, 항상 노란색 콧물을 달고 살았던 형아들의 반질반질한 손등과 소매자락을 보며 아부지의 제자들 틈에 난 그렇게 자랐다. 형아들 머리의 땜방은 가르마처럼 다들 그런양 자연스러웠고 시골 분교의 학부형 뇌물이래봐야 감자 한 봉다리, 고구마 한봉다리, 양파나 빠알간 고추들로 기억한다, 걔중에 최고의 뇌물은 볏짚에 싸인 방금 갓낳은 흰닭의 따스한 하이얀 계란 한줄..
어느덧 내가 아빠가 된 지금도,
아직 가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에 가끔 눈물 짓곤 한다..
.
나는 근처에도 못가본 유치원 가던 친구들은 동리에서 겨우 한둘, 피아노다, 바이올린이다 구경이라도 해본놈들은 면에서 아마 한놈이나 있을까 몰겠다. 레슨은 말이라고 하겠냐만,,
내나이 여섯, 일곱에 사시사철, 결혼을 세 번해 마지막 외할머니가 친 외할머니인줄로만 알았던, 그래서 막내 친외삼촌이 내보다 겨우 세 살위다. 외할아버지는 만석꾼, 남강 범람할 때 돈말린다고 김상, 이상 그때 까지만해도 하인들을 시켜 돈말리던 그런 만석꾼 외할아버지에게 결혼 세 번이 머 대수였겟냐만,,, 그 너른 마당에서 잔치라도 할라치면 온동네 사람들 다 마당에 퍼져 앉아도 정원에 흐드러지게 핀 천리향 나무는 온전했다. 다른 나무들은 말할것도 없고,, 외삼촌 이름은 “모정기” 겨울이면 신기하게도 못대가리를 분질러 썰매 손잡이를 만들고 그 드센 강철을 휘어 썰매 를 만들어내는 요술쟁이였으며, 방패연날리기, 미나리깡에선 나무를 깍아 팽이를 지치고, 채찍은...음... 아마 버드나무 가지 이파리를 다 띄내고 만들었나?
그건 잘 기억이 안난다... 아...! 외삼촌이랑 뒷산 아래서 눈내린 겨울 어느날 젖은 바지 말린다고 외할아버지 바지에서 퉁쳐온 성냥으로 불쏘시게 만들다 산불로 번져 삼촌이랑 내캉 토꼈다. 동산이라 하기에는 적지않은 뒷산, 이름하야 “미제 방화 사건”범인은 누군지 아직도 모를끼구마는.. 여튼 내 어린날의 추억을 고스란히 나눈 고마운 우리 외삼촌...
.
어느덧 내가 자라 우리 1남 3녀의 장남이자 4대 독자로 커 지금은 누나, 여동생들이 낳은 조카들의 유일한 외삼촌이 되버린 지금, 그 내 외삼촌의 추억이 고스란히 내리 사랑으로 자라나 지금도 구미 선산에 있는 중2 응일이, 초등 4학년 응원이에게는 내가 지네들에겐 최고다.
아마도 그 머시마 조카들이 한창 응일이가 초등 3학년때 였으면 응원이는 까랑년이었을때부터 이마트서 산 오만원짜리 고무 보트에 셋 나란히 양반다리 포개고 앉아 구산면 명지에서 보리멸이다, 도다리다 그 잊지 못할 손맛을 안겨준게 추억이 되버렸고, 진해 명동에선 풀치다, 조기다 처박기 낚시에 조카들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삼년전인가.. 수출후문 그 추접은 똥물에도 민물이 만난답시고 회유해 들어오던 가지메기를 민장대 하나에 대충 끼워준 청개비에 놀라 자지러져 불과 일곱 살짜리 응원이에게 제압이 불가능했을범직한 커다란 가지메기 손맛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게 해준 장본인도 지금의 외삼촌인 바로 나다. 요즘 자형도 묵고 살긴 사나 보다 싶은게 전에 차도 좋더마는 불과 이년만에 넘들 타는것 보다 더 큰 차를 누나가 몰고 오는것 보니 김유신 장군 집 종지에 있던 간장맛에 다름 아닐게다.. 여름이다, 겨울이다 하믄 꼭 나도 첨 외국 나가본게 갓 스물하고도 여섯이었는데 이미 이 조카 녀석들은 연수다 삼서 싱가폴이고 말레이시아고 할것 없이 가족 여행을 간다쿠모 태국은 기본이란다. 쪼깬한것들이 벌시로 마일리지가 우떻고 삿는거 보면 어이없어 하면서도 근데도 이녀석들은 외삼촌이랑 가는 낚시와 여행이 더 좋단다. 지켜보노라면 흐뭇한 내 조카들...
.
아직 못다한 얘기가 남아 있다.
내 어릴적 그 시골 학교 관사에 살며 어머님이 아버님 손님 치룰라면 그 귀하디 귀한 삼양라면 다섯개를 연탄불에 물끓여 내놓을라 치면 이미 그 손님분들은 집에 가고 없었다.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곤로도 없던 곳에 귀한 연탄 땐다케도 라면 다섯 개 끓일 요량이면 그 물이 언제 끓겠냐만.. 아버지는 쥐꼬리만한 봉급을 가지고서도 자식 넷을 키우며 분교 형아들 브라스밴드다, 축구부다 만들곤 어머님 잔소리를 피해 봉급을 쪼개 악기를 구하고, 축구부 하이얀 체육복을 직접 구해다 입히시곤 했다.. 그러던 우리가 누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할때쯤 서울서 대학나온 젤 큰 외삼촌이 여동생인 우리 엄마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우릴 고스란히 마산으로 이사시키셨다. 건축설계 사무소 사장님은 외삼촌이셨고 아버지는 소장.. 원래 선생님이시던 아버지가 마산 시내에, 그것도 큰 감투를 쓰셨으니, 그나마 하얀 얼굴에 인물 훤하고 노래를 곧잘 부르시던 아버님.. 지금도 시골에 가면 팔촌 아제가 그러신다. 너거 아부지 참말로 노래 잘했따. 맨날 천날 면이다, 읍이다 노래자랑 나가서 염소하고 송아지도 갖고 오더라만 삼서 지금도 아이고 배야~ 하신다. 그러든 아버님에게 시내 생활이 어떠했겠는가.. 한달 쥐꼬리 초등학교 선생님 월급이 어느날 갑자기 하루에 그 몇배를 만지시기 시작하셨으니 근처에 널부러진게 술집이고 여자들 아니었겠는가...
참으로 슬픈 기억의 가족사가 내 마음에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 있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학교에서 캠퍼스 커플이였으니 만나 누나를 낳은게 불과 아버지 나이 스물 넷, 내가 마산에 와 국민학교를 들어갈때쯤 이래봐야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마산에서의
시내 생활이시라.. 원래 아버님은 술을 전혀 못하신다. 그러다 시작된 접대다,하니 그담 가족들의 힘듬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맨날 술이셨다. 아버님은...
몸이 술을 이기지 못하는데 마신 결과야 항상 참담함으로 기억한다.
가세는 기울고 아버님의 술은 습관처럼 반복되고 그 착하디 착한 시골 관사의 때묻지 않은 소년같은 아버님의 모습은 간데 없고 그때부터 기억하건데 아버님은 일그러진 자화상이셨다..
지금 아버님은 알고 계실까..그때 감수성 예민한 우리 형제들의 깊게 패인 상처로 남은 상흔을.. 어머님... 힘드신 삶을 지탱해 주신 고마운 우리 어머님..
.
.
.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 가족들만이 모였다. 누나는 조카 셋을 구미에서 델꾸오고 여동생 둘은 그 둘데로 어린 여자 조카들을 델꾸 오고 내 아들까지 해서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내 핏줄이 섞이지 않은 이는 우리 아내 뿐이었다. 희안하게 그때 자형과 제매 둘은 일로 인해 다 빠져버린, 어머님, 누나, 나, 아내, 여동생 둘, 응일이, 응원이, 준호, 규민이, 수진이, 소진이 해서 어른 여섯, 아이 여섯. 말할것도 없었다. 집안의 대주가 되버린 내게 결론은 바다요, 내륙 선산에서 온 조카들이야 말이 필요 없이 바다이기를 원했다. 마침 낚시를 통해 알게된 지인들이 밟고온 땅, 예외없이 그곳으로 정했다. 아름다운 곳, 남해의 풍경이 펼쳐진 풍광, 그 아름다운 남해 푸른 바다에 내 핏줄들만이 함께한 일박이일의 일정은 어리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시절, 상처로 아파하던 내 가족들의 시름과 차마 아파 꺼내기 싫은 슬픔을 날려 버리기엔 더할나위 없는 곳으로 떠나는 우리만의 시간 여행이었다. 떠나기전 애들을 제외한 모두가 여자들이기에 어머님과 처가살이에 더러 고단할 누나와 여형제들, 내 아내에게조차 손가락에 물한방울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아 모든걸 돈으로 해결할 요량이었다. 아니 내 가족들에게는 그래도 됐었고 또 그곳을 알게된, 소개받은 고마움에 가는 그곳을 위해 돈을 쓰고 오리라 맘 먹고 있던 참이었다. 심지어 조그마하게 장조차 보지 않았을 정도로..
.
전화를 했다.
“바다에 꼭 보내달란 얘기와 함께 모든걸 얘기 전하고” 먹을꺼리 준비를 신신 당부하고 멋지게 차려 주십사하는것과 가족들과 조카들의 추억 여행을 위해 우리가 직접 잡을 고기에 못하는 칼솜씨라도 썰어먹고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진정한 우리 핏줄들만의 진한 가족의 우애를 위해, 조카들의 그 좋아하는 바다를 위한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출발전 있기만 하면 잡을 요량으로 감성돔 밑밥 12장 파우다 3개 하고 낚시대는 5.3미터 1호대 두 대 4.5미터 1호대 하나 원투대 두 대, 돌돔대 하나, 그것도 모자랄까봐 루어대 두 대까지해서 더구나 릴 뭉치 여섯 개를 두 개의 낚시가방과 소품통, 찌통, 각 구명조끼 셋, 밑밥통, 파우더와 압맥을 담은 비닐 봉지 해서 누나차, 내차,하여 두차에 나눠타고 그 싱그럽던 바람의 카페리를 거쳐 통통배에 다시 옮겨타고 그 무거운 낚시짐을 들기가 버거워 조카들과 나눠 낑낑 거리며 날밝은 오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전 이미 말씀 전했듯 밥은 30분쯤 뒤 준비되고 먹고 웃으며 부푼 가슴으로 가족들의 시간 여행이 시작 되려는 찰나,
.
내일 배를 띄울수가 없단다...
.
.
이유는 단순했다. 높은 분 자제 결혼식 참석 해야한다는..
.
.
우린 이내 포기 했다.
모든걸 이곳에서 해결하기 위해 어쩜 돈을 쓰기 위해 온 여행이었더라도,
적어도 부푼 가슴으로 바다에서의 추억을 위해 마냥 신나게 준비해온 저 많은 낚시에 관련된 짐들이 무용지물이 되더라도,
잘 잡으나 못잡으나 바다에서 함께하는 웃음띈 우리 가족들만의 바다를 포기하더라도,
내가 가족들에게 온갖 기대와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지게끔 만들었더래도,
저 어린, 특히 응일이와 응원이가 외삼촌이랑 함께할수 있는 잊을수 없는 추억 여행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이젠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우리 핏줄들만의 시간을 포기하더라도,
.
난 포기 했다.
왜냐면, 그렇다고 하니까....
.
더구나 기쁘고 부푼 맘으로 찾아온 가족 여행에 인상 찌푸릴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
우선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그 담은 조카들을 납득 시켰다.
그렇다고...
가까운분 자제 결혼식 때문이라고..
.
.
혼란 스러운 내 마음..
어쩌면 그 깊은 아쉬움은 나보다 내가 여행을 떠나 오기전 가족들 게 애써 표현한 부푼
기대만큼이나 실망은 가족들이 더 컷으리라. 그래도 내색 않는 고맙고 착한 내 가족들..
.
내 가족들과의 한때.. 언제고 다시 올수 없는 우리 가족들만의 시간..
내심 마음을 이내 다잡고 근처 뻘밭에 나가 웃음으로 가족들을 대했다.
내 맘은 혼란 스러웠지만 아님 어때...
가족들이 저렇게나 떠나온것을 행복해 하는데.... 하며 애써 자위했다.
식사후, 물빠진 뻘밭에 다녀온 우리 가족들은 각자 두 개의 방에 나눠 짐을 내리고..
시설에 대한 부분은....
아................!
.
그곳에서 낚시 지인들을 만났다.
그렇게 한곳에 둘러 앉아 지인들과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추스르려 해도 목에 들이키는건
많이 마셔서 빨개지는 내 얼굴과, 애써 잊으려 해도 들이켜 술로만 채워지는 내 빈속..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시간 내 가족들은 바깥 바람에 뭐하나 먹기에 불편해진 발걸음으로 인해 방에서 TV를 보는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게 없다는 사실을...
바다가 우리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었는데.. 그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이곳까지 왔으며 그 추억이 이곳에서 누리고 싶었던 가장 큰 호사였는데..
네, 다섯살 어린 조카들이야 바다에 못데리고 나가고 어머님이 보시면 되지만,
내 사랑하는 형제들.. 그 아팟던 젊은날을 잘 견뎌내고 굿굿하게 자란 내형제들과 나, 그리고 내 조카들이 누리고 싶었던 바다..그리고 시간들...
마신 술이 불콰해져 무거운 마음이나마 달래려고 차라리 준비해온 그 많은 밑밥을 고기에게
밥이라도 줄 요량으로 부는 바람 시린 방파제에서 홀로 우두커니 만취 상태에서 대를 드리웠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새벽녘 해가 어스름할때까지 밑밥은 부어도 부어도 줄어들 기미가 안보였다.
이미 새벽 하고도 여섯시나 됐나.. 술은 되고 얼굴은 술로 인해 붓고 추위도 술로 인해 잊어 세찬 바람 맞아 더 퉁퉁 붓고.. 슬며시 가족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눈을 붙인지 몇시간이나
흘렀을까...
.
삼촌..! 삼촌..!
하며 응원이가 나를 깨운다..
실망을 잊으려 너무 마신 술에 찬바람을 너무 맞았는지 몸도 가누기 힘든 상태에서,
응원아.. 지금 몇시고...
.
삼촌 밖에 함 나가봐..!!
응원이의 땡그랗게 뜬 두눈...
응...?
그때까지 난 비몽 사몽 이었다.
열시가 조금 넘었던 시간이던가.....
대충 정신을 추스리고 바깥을 나가서 난 보고야 말았다.
.
.
.
배가 바람을 가르며 바다를 다녀와 여섯, 일곱의 낚시인들이 내리는 모습을..
그 낚시인들이 출정식을 다녀온듯 씩씩했던 그 발걸음을..
손에 손에 낚시가방과 구명복을 내려 놓으며 환하게 웃고 있던 그 모습들을...
.
.
.
이게 어떻게 된일인가.......
도데체 이게 무어란 말인가...
.
.
정신은 번쩍 들고 아직 입이 굳어 내입에서 채 말도 떨어지기전....
.
.
그는 말했다.
""대신 결혼식에 사람을 보냈다고....""
.
그게 다였다.
.
.
.
.
그 순간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진 내 심경을 그 누가 알 리가 있을까..
도데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 달란 얘기조차 기가 막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내게 저들은 도데체 누구이며 저들은 언제 이곳에 왔으며 저들은 어떻게
우리 가족이 가야할 곳에 버젓이 바다를 만끽하고 왔단 말인가...
.
한동안 멍하니 이 상황을 달리 가족들에게 납득시키고 설득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차마 내 어린 조카가 보고야만 이 상황을 설명해 줄수 있는 길이 없다는걸 깨달은건
순식간 이었다.
.
내게 던졌던 그의 단 한마디의 말..
“결혼식에 다른 사람을 보냈다...”
.
이 상황은 추론이 가능하다,
분명한 분석도 가능하다.
.
허나 이걸 애써 추론하고 싶지 않았다.
이걸 애써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떠오른건 속에서 올라오는 격노만이 남아 있었다.
.
그리고 들려오는,
조금 뒤 방을 청소해야 한다는 한마디..
.
.
대충 마무리 짓자..
아니 지금 이글 마저도 빨리 마무리 짓자.
아예 이글을 세세히 쓰지도 말자..
이 기억을 끄집어 낼때 다시금 북바치는 그 분노를 다시금 되새기기 싫어
애써 그곳의 기억을 외면해 왔는데...
.
.
난 그 섬 뒤로 혼자 들어가 그 높다란 바위에서 혼자 앉았다.
깊은 시름과 함께 애써 이 상황을 외면하고 물고 있었던 담배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내 분노를 살랐다.
.
이후 내 가족들과 함께 손님이고 뭐고 순서도 이미 뒤바껴 버린 한끼니 식사를
대충 끝내고 계산을 다하고 난뒤,
그래도 가족들은 여한이 남는지 그 섬을 한바퀴 돌고 나서야 도망치듯 그섬을
빠져 나올수 있었다.
.
.
마지막으로 그가 내게 건넸던 명함은 돌아오는 바다에다 던져 버렸다.
.
.
내게 우리나라 지도에서 그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형의 땅.. 알카트라즈...
2007.06.29 07:59:29
모기시러
그런 아픔이...
2007.06.29 08:35:24
낚조바조
감뢰하는 운영진이 모습에...찬사를~~
2007.06.29 09:08:10
전갈자리™
ㅠㅠ
조카의 하루 ......ㅠㅠ
안타깝네요....
또 다른 멋진 추억 만들기가 있으시길....
2007.06.29 11:08:00
보골장군™
행님..
3번 정독하고 로그인해서 댓글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미더
2007.06.29 12:45:37
화백
그렇네요.
이런글 시기적절히, 조금 일찍 올려 주셨더라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코난님!
유화스럽게 올려주신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억제된 감정으로,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해 주셨네요.
바랍니다...........
더이상 상기의 사건으로 불편해 하지 마시고,
여유로운 웃음으로 활동해 주시기를요.
웬지...
심사숙고한 냉철한 이성이,오히려 불편해함을 안고 있는듯 하여
마음이 무겁네요.
좋은분들!
좋은모습으로 그렇게 그렇게 ........
뵙고 싶습니다.
2007.06.29 12:50:08
돌짱게
인자보니 정말 문제있는 양반이네..
강퇴 잘 했습니다..
2007.06.30 22:38:46
호래기가좋아
세상에 이런일이.......................세상에 이런일이............................
................세상에 이런일이...................................
이런 ................배신감 .............느껴보지 않고는 모럼니다 몰라여...................
그래서 난 될수있어면 마눌과 둘이서 오붓하게 방파제 낚시를 즐깁니다...
방파제 잘 찾아보면 갯바위나 배낚보다 괴기 많습니다 ...................
지금은 부산에 가까운곳 방파제 이곳 저곳 쑤시 봅니다
겨우 한군데서 우럭이가 25.....30..정도 한마리 아님 두마리 초저녁에 무네여.....
,.............코난님 맘 잘 추수리시고 힘내세여................
그라고 사량도나 한산도 욕지도 방파제도 좋은데 많아여 텐트치고 밥하고 삼겹살굽고 이렇게 놀다가 고기잡히면 회도한사라 ......좋은데 많아여 담 기회가 된다면 언제나 연락주세여 좋은데 추천할께여..............................
언제 기회가 된다면 동네에서 제가 한잔 대접해도 될런지요....
그런 시간이 오길 기대하게습니다...